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이 교수들에게 2년 미만 기간제 행정직원 계약을 종료하라는 이메일을 발송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메일 발송 전 카이스트는 공공연구노조 한국과학기술원지부와 고용안정협약을 맺었는데, 합의를 파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2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카이스트는 지난달 29일 ‘기간제 노동자 중 2년 이하 재직자 활용 관련 안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연구실 담당 교수들에게 발송했다. 이메일에는 “지부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 및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기본 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2년 초과한 재직자의 경우 정년보장 등 고용안정을 시행한다”며 “2년 이하 재직자의 경우 2년을 도래할 때 재계약이 불가하니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카이스트와 지부는 올해 10월17일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상시·지속업무를 하는 2년 이하 재직자들의 고용안정 방안을 논의했다. 지부는 “별정직 취업요령에 따라 올해 9월1일 이전 입사자의 경우 연구비의 재원이 있는 경우는 계속 근무를 할 수도 있으니 이를 실무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취지의 구두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런데 실무위를 열기도 전에 계약종료를 통보한 것이다.

올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취업규칙(별정직 취업요령) 일방 개정과 관련한 질의가 이어지자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답변했다. 개정 취업규칙에는 “연구인력이 행정업무를 일부라도 수행하는 경우에는 임용기간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행한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시행시기는 올해 9월1일이다.

카이스트에는 1천2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그중 연구과제 관리를 위한 상시·지속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은 800명이 넘는다.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가이드라인에서는 정규직 전환 대상 상시·지속업무 기준을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향후 2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로 정하고 있다.

카이스트의 기간제 편법고용 논란은 오래된 일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2년 사용기간 제한을 피하기 위해 기간제 쪼개기 계약을 하거나 퇴직과 재입사를 반복하게 하는 식이다. 지부가 지난 6일 조합원 2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 차례 이상 임용된 경험이 있는 이가 129명(45%)이었다. 88명은 고용공백이 있었다. 카이스트는 이메일 안내에서도 “기간만료를 사유로 고용을 종료한 것에 대해 5건의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있다”며 “노동위에서는 모두 부당해고로 판정했다”고 적시했다. 계약종료가 부당해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정미 의원은 “카이스트는 상습적으로 기간제법을 악용한 부당해고를 중단하고, 지부와 실무위원회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비정상적인 비정규 노동자 인력운용 현황을 감사하고, 고용노동부도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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