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위험업무 외주화 금지가 최근 ‘고 김용균 대책’으로 불리는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에서 제외돼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하위법령 개정안에도 위험업무 도급금지가 담기지 않았다. 일부 조항은 올해 4월 정부가 입법예고한 것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계 요구에도 입법예고안 ‘그대로’

정부는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을 의결했다. 내년 1월16일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시행되기 때문에 하위법령도 전부개정에 나선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작업은 지난해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씨가 사고로 숨지면서 탄력을 받았다. 정부는 전부개정안이 그해 12월 국회를 통과하자 올해 1월 공포했다.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책임을 확대하고 유해물질 취급업무 도급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올해 4월 시행령·시행규칙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는 그러나 입법예고안에서 유해물질 취급업무만 도급금지·승인 대상에 포함하고 발전소나 조선업 같은 위험업무를 제외했다. 노동계와 노동전문가들은 “위험의 외주화 금지가 빠져 있다”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시행령에는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요구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정부는 그동안 도급인가 대상이었던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 가공작업 같은 유해작업은 사내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급성독성이 있는 물질을 포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작업은 사내도급시 승인을 받게 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시행령 개정안은 입법예고안대로 ‘중량비율 1% 이상의 황산·불화수소·질산·염화수소 취급설비의 개조·철거 등의 작업 및 해당 설비 내부에서 하는 작업’을 사내도급 승인 대상으로 적시하고 있다.

노동계는 법에서 도급을 금지한 ‘유해한 작업’ 범위를 시행령에서 ‘취급설비의 개조·철거’로 축소한 것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고 김용균씨가 일한 발전소와 사내하청 노동자 사망이 잇따르는 조선업, 철도 선로보수업무 같은 위험업무가 포함되지 않아 ‘김용균법’으로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비판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와 산재 유가족에게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약속했는데 정작 서울지하철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위험업무는 외주화를 허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원청이 안전보건조치를 취해야 할 사업장을 시행령에서 추락·붕괴·감전 위험장소 등 14곳, 시행규칙에서 화재·폭발 위험장소 7곳으로 규정하고 원청 처벌을 강화한 것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망사고가 잦은 지게차나 인양설비·컨베이어 같은 위험기계기구를 사용하는 경우를 원청의 안전보건조치 대상에 넣자는 노동계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논평에서 “문재인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은 현장 노동자 목소리를 무시한 데다, 개정된 모법의 의미도 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정직한 노동을 절망하게 했던 한 청년의 죽음 이후 1년 가까운 사회적 논의 끝에 마련된 방안들”이라며 “한 발을 내디뎌야 다음 발도 내디딜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말했다.

일부 조항은 후퇴하기까지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내용 중에는 입법예고안에서 후퇴한 내용도 눈에 띈다. 정부는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노동부 작업중지명령에 대해 사용자가 해제요청을 했을 때 심의위원회를 “4일 이내에 개최·심의”하도록 했다. 그런데 노동부가 법제처 심사를 받아 다음주께 확정할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4일에 “토요일·공휴일”을 포함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4일의 기간에 연휴가 겹치면 심의위가 현장실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졸속심의 끝에 작업중지를 해제할 수 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입법예고 뒤 여러 차례 의견을 말했는데도 정부가 오히려 규제를 완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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