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대법원은 약 1년 전 두 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를 인정했다. 그런데 문제해결 종착점이 돼야 할 대법원 판결은 한일 양국 정부의 정치·경제·외교적 갈등의 기폭제가 돼 버렸다.

일제 강제동원 문제는 강제노동·인권침해가 본질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20년 전인 1999년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에서 일제 강제동원 문제는 일본이 1932년 비준한 ILO 29호 협약(강제노동 금지 협약)을 위반한 것으로서 일본 정부가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ILO는 그 이후에도 올해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제시대 국민징용령에 따른 강제징용뿐만 아니라 당시 관 알선, 기업 모집 등의 방식으로 강제동원은 폭넓게 전개됐다. 이 모두가 불법적인 강제동원에 해당한다. 동원 방식은 물론 노동현장 참상을 생각하면 기본적 인권의 관점에서 문명국가·문명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맹목적인 대결 분위기 조장이 아니라 차분하고 냉정한 논의와 해법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첫째, 진상규명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당시 일본 전범기업 니시마쓰건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강제동원 불법성을 인정하면서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했다(다만 최고재판소는 중·일 공동선언으로 인해 소구권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한국인에 대한 강제노동 실상이 중국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니시마쓰건설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역대 일본 정부 또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실체적인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지는 않고, 다만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더 이상 이를 청구할 수 없다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일 양국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의 인권침해·불법성·강제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기반해 당시의 참혹한 실상을 정확히 밝혀내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것이 바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둘째,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위로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과거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실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해야 한다. 작금의 강제동원 문제는 배상 문제를 중심으로 논란이 전개되고 있으나 이에 앞서, 아니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일 수 있다. 강제동원 현장에서의 위령제 실시와 일본 현지 유해 등의 반환, 생존 피해자에 대한 사과 표명, 각종 위령사업 등이 필요하다.

셋째, 책임에 기반한 실질적인 배상조치다. 한국 외교부는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금으로(소위 1+1안), 문희상 국회의장은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과 국민성금 등으로(소위 1+1+α안) 재단을 마련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려는 대강의 노력은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이 적절하지 않다면 문제가 더욱 꼬일 수 있다. 외교부와 국회의장이 제시한 해법은 일본 정부와 기업의 책임에 기반하지 않아 면죄부를 부여하는 안이라는 점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해법 제시 과정에서 피해자측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에 있어 피해자측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일본 정부와 기업 책임에 기반한 실질적인 배상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전범기업 니시마쓰건설과 미쓰비시머티리얼 등이 중·일 공동선언에도 화해 방식으로 피해회복에 나선 것을 참고할 수 있다. 이미 강제동원 피해자의 위자료 청구권이 판결을 통해 확정됐으므로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과 적극적으로 화해하는 조치에 나서고, 일본 정부가 이를 봉쇄하는 태도를 버리면 된다. 독일 정부와 기업이 자금을 출연해 만든 기억·책임·미래재단을 통해 피해회복에 나선 것도 참고할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등 시민단체의 수십 년에 걸친 외로운 싸움, 한일 양국의 수많은 변호사들과 양심적 지식인들의 관심과 연대에서 비롯됐다. 앞서 언급한 99년 ILO의 전문가위원회 권고도 일본 오사카 특수영어교사노조의 진정에서 비롯됐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최근까지도 필자는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했고, 문외한이었다. 최근에서야 몇몇 자료를 보고, 심포지엄을 추진하면서, 그리고 일부 소송을 대리하면서 그 실체에 아주 조금 이해를 갖게 됐다. 앞서 언급한 일제 강제동원 문제는 어느 것 하나 해결이 쉬운 게 없다. 단기간에 해결 전망이 밝다고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더 깊고, 더 넓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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