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집을 찾아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방문서비스 노동자로 불리는 이들은 어떤 모습의 소비자가 있는지도 모르는 낯선 집에 홀로 들어가 일을 한다. 소비자에게 감금·폭행을 당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일도 있었다. 폭언·폭행·성희롱을 겪고도 업무를 끝내려 현장을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증언은 그 자체로 살 떨리는 공포영화다. 요양보호사와 도시가스 점검·검침원, 정신건강복지센터 노동자, 설치·수리 노동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담은 글을 보내왔다. 네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공순옥 공공운수노조 서울도시가스분회장

우리는 도시가스 점검원입니다. 대한민국 전국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세대는 1년에 두 번(취사·난방세대) 또는 한 번씩(취사세대) 가스 사용시설 안전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고객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무조건 세 번 이상을 가가호호 방문해 점검해야 합니다.

고객이 아침에 오라면 아침에, 저녁에 오라면 저녁에, 토요일·일요일에도 고객이 원하면 방문해야 회사에서 원하는 점검률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공급사들은 한 세대도 빠짐없이 점검하길 원합니다. 그러니 가끔씩 성희롱·폭언·폭행 위험을 느껴도 일을 중단하지 못하고 점검을 하다 큰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점검은 고객 집으로 들어가서 해야 해 남자 혼자 있는 집은 조심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남자가 이상행동을 하면 악! 소리내기도 두려워서 빨리 빠져나오기 바쁩니다. 속옷만 입고 나오시는 분들, 본인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우리가 옷을 입으라고 하면 기분 나빠 시비가 될까 봐 아무 소리도 못합니다. 같은 곳을 다음에 또 방문해야 하기에, 또는 민원이 커질까 봐 조용히 지나가려고 합니다. 점검을 못하면 점검률이 안 나오니까요.

요즘은 폭언도 많이 듣고 다닙니다. 화난다고 욕하고, 초인종 눌렀다고 혼나고, 문 두드렸다고 혼나고, 낮에 방문했는데 안 계셔서 저녁에 가면 늦게 왔다고 혼나고, 평일에 없어서 주말에 가면 쉬는데 왔다고 혼납니다. 도둑 누명으로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 누드로 아무렇지 않게 문 열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률을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밤낮으로, 휴일에도 점검을 나갑니다. 우리도 욕먹으면서 점검하고 싶지 않습니다. 욕하고 거부하고 화내면 점검하지 않아도 되는 거부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험을 느낄 때도 점검 거부권을 줘야 합니다. 그러나 거부권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점검을 거부한 건은 점검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고객만 점검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고객이 점검을 거부할 때 점검거부 확인서명을 받으라고 하는데 거부하는 사람들은 문도 안 열어 줍니다.

우리는 검침과 고지서 송달도 합니다. 봄에는 미세먼지로 눈을 뜰 수가 없고 목이 따갑고 숨을 쉴 수가 없어도 검침·송달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합니다. 여름에 며칠씩 장마가 와도 겨울에 한파가 와도 검침·송달업무는 정해진 기간 안에 마쳐야 합니다. 폭설이 며칠 동안 내려도 검침을 해야 했습니다. 신발이 눈에 푹푹 빠져서 발이 젖고 시려 집에 가고 싶지만 검침을 안 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옆에 유리를 싸는 ‘뽁뽁이’가 있어서 발목과 신발을 싸서 고무줄로 묶고 일한 일이 기억납니다. 본사 담당자들은 자기들이 현장에서 일을 안 하니 우리의 어려움과 심정을 모르는 건지, 화가 나서 관리자에게 전화해 이런 날은 검침을 하루 정도 늦춰 줄 수 없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일을 시작한 2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환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맞벌이 가정이나 혼자 사는 원룸이 많아 낮에 점검하러 다녀도 사람 만나기가 힘듭니다. 점검원 1인당 맡은 세대가 더 많아진 데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점검하는 추세입니다. 조건은 더 나빠지는데 일은 더욱 세밀하게 원하고 있어 점검원들은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니며 일을 합니다. 시대 변화에 맞춰 맞춤형 점검을 원한다면 공급사와 지자체가 당연히 그것에 맞는 업무량·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 폭언·성희롱·위급상황에서 혼자보다 둘이 대처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2인1조로 점검을 간다면 고객들도 조금은 조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시가스 점검원도 휴일을 휴일답게 쉬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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