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명호 변호사(법무법인 오월)

대상판결 : 대전지법 2019. 8. 28. 선고 2018구합104220 판결


1. 사건 개요 및 쟁점

원고 회사는 상시 약 120명의 근로자를 사용해 버스여객자동차 운수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다. 피고 보조참가인은 원고 회사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조직된 산업별 노동조합이다.

원고 회사에는 전북지역 내 운송사업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직된 지역별 노동조합이 설립돼 하나의 노동조합만 존재했는데, 위 지역별노조에서 탈퇴한 조합원들이 기업별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수개월 후 지역별노조를 탈퇴한 다른 근로자들이 산업별노조를 설립해 총 3개의 노동조합이 존속하게 됐다. 원고 회사는 지역별노조와 기업별노조에는 사업장 내 별관 건물 2층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한 반면, 산업별노조에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다가 사업장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무실을 제공했다.

원고 회사의 근로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위 지역별노조·기업별노조·산업별노조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9조의2(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따라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2016년 5월8일 지역별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정했다. 원고 회사와 교섭대표노조(지역별노조)는 2017년 12월2일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위 단체협약 13조는 “회사는 노조지부에 사무실 및 필요한 집기·비품·통신시설 등 회사시설을 대여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후 원고 회사와 교섭대표노조는 같은달 19일 “단체협약 13조와 관련해 현재 회사 사업장이 협소하고, 기존 조합사무실을 분할해 사용하는 것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므로 기존에 부여된 조합사무실 이외의 노동조합에는 회사 외부에 적당한 장소를 조합사무실로 제공한다”는 내용의 부속합의서를 작성했다. 한편 위 단체협약 체결일 당시 각 노동조합별 조합원수는 지역별노조 95명, 산업별노조 15명, 기업별노조 4명이었다.

산업별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원고 회사와 진행한 단체교섭 과정을 산업별노조에 공유하지 않은 것’과 원고 회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중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과 관련한 단체협약 13조 및 부속합의서가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했다. 전북지방노동위는 산업별노조의 시정신청을 일부 각하 및 기각했으나 중앙노동위원회는 교섭대표노조가 단체교섭 과정을 산업별노조에 공유하지 않은 행위와 원고 회사가 체결한 단체협약 중 13조(노조사무실 등 제공)는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이에 원고 회사는 중앙노동위의 판정 중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과 관련한 부분의 취소를 구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원고 회사가 산업별노조에만 사업장 내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은 것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여부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에게 부여되는 공정대표의무는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또는 그 조합원에 대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한 사항, 즉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등도 포함된다고 할 것이고, 교섭대표노조와 원고 회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상 노동조합 사무실에 관한 규정은 소수노조인 산업별노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봤다.

대상판결은 또 “노동조합 사무실은 조합원 교육이나 회의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신규 조합원 모집이나 조합원 상담 등 노동조합의 존립과 발전에 필요한 일상적인 업무들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노동조합법이 보호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요소다. 이러한 활동은 주로 회사 내에서 이뤄지는 특성상 원고 회사가 조합의 활동공간을 보장해 주지 않을 경우 산업별노조로서는 기본적인 조합활동조차 용이하게 진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고 회사가 노동조합 사무실로 제공할 장소를 마련하기 여의치 않다는 이유만으로 산업별노조보다 조합원이 훨씬 적은 기업별노조 및 교섭대표노조에게는 사업장 내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면서 산업별노조에게는 사업장으로부터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원고가 사업장 내 공간이 협소해 나중에 설립된 산업별노조에 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간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원고는 산업별노조에게 다른 노동조합에 제공한 사무실보다 작은 사무실을 제공해도 무방하고, 원고 사업장에는 사용하지 않는 빈 공간이 있거나 기존 공간을 적절히 재배치해 가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필요최소한의 공간으로서 작은 사무실 한 곳을 마련할 공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고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와 평가

대상판결은 임금·수당·근로시간·휴일 및 휴가 등의 근로조건과 같은 규범적 부분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사무실, 근로시간 면제, 조합비 공제 등과 같은 채무적 효력을 갖는 부분에서도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이 문제될 수 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특히 대상판결은 종래 법원이 사용자가 교섭대표노조에는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다른 노조에게 물리적인 한계나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노동조합 사무실을 전혀 제공하지 않은 경우를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에서 나아가, 사용자가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했음에도 일부 노조에게만 사업장 내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하지 않고 사업장 밖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한 것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대상판결에서 원고는 기업별노조가 산업별노조보다 먼저 설립돼 사업장 내에 노동조합 사무실을 제공한 것이고, 비록 단체협약 체결일 당시 기업별노조의 조합원이 산업별노조 조합원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기업별노조가 이미 획득한 기득이익(노동조합 사무실)을 박탈할 수 없고, 만일 원고가 임의로 이미 제공한 노동조합 사무실을 박탈하거나 공간을 재배치한다면 노동조합 사이에서 중립을 지킬 의무를 위반하게 된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노동조합 사무실이 조합원의 교육이나 회의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신규 조합원 모집과 조합원 상담이 이뤄지는 등 노동조합의 존립과 발전에 필요한 일상적인 업무들이 이뤄지는 공간으로서 노동조합법이 보호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해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활동은 주로 회사 내에서 이뤄지게 되므로 만일 원고가 사업장 내에 조합의 활동 공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산업별노조로서는 기본적인 조합활동조차 용이하게 진행하기 어렵게 되므로, 사용자인 원고는 기존 공간의 적절한 재배치로 가용할 공간을 확보할 의무가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는 법원이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를 단지 사용자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각 노동조합에게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할 중립유지의무로 보는 것에서 나아가, 단체교섭 과정이나 그 결과물인 단체협약의 내용뿐만 아니라 교섭을 전후해 노동조합 간 그리고 조합원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전 과정에서 교섭대표노조와 함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및 조합원들 사이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을 적극적 의무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4. 결론

대법원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다는 생존권의 존재목적에 비춰 볼 때 노동 3권 가운데에서도 단체교섭권이 가장 중핵적인 권리임은 부정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단체교섭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므로 이를 보완하는 제도적 장치인 공정대표의무는 노동 3권 중 가장 중핵적인 권리인 단체교섭권을 제한당한 소수노조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보장하는 방식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대상판결은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여부에 관한 차별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사무실 장소에 관한 차별도 공정대표의무 위반이 될 수 있고,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는 단지 중립유지의무에 그치지 않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지 않을 적극적인 의무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론에 부합한다. 대상판결은 교섭대표노조 외에 사용자도 독립적인 공정대표의무(차별금지의무)의 주체로 규정한 노조법 29조의4(공정대표의무 등) 1항의 문언에도 부합하는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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