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눈도 못 뜬 채 배냇짓을 잘 지었습니다. 너무 예뻤어요. (…) 우리 용균이는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어요. 엄마 아빠 생활고에 알아서 크는 아이였죠. 정말 미안했어요. 애어른 같아서.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지 정말 몰랐어요. 우리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이, 그 애만 보고 살았는데…."

8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 묘역에서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흐느끼며 말을 이어 갔다. 몇몇 추모객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길게 심호흡을 한 김씨는 "우리뿐 아니라 수만명의 억울한 죽음들, 그 가족들, 또 앞으로 당해야 할 수많은 죽음들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어머니의 눈물이 마를 그날까지 약속하자"며 "비정규직 철폐하라" 하고 외쳤다. 추모객들은 "위험의 외주화 금지하라" "약속을 이행하라"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고 김용균 노동자의 1주기 추도식'이 열린 모란공원 묘역에는 전날 내린 싸리눈과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지만 추도식을 찾은 사람들의 온기로 제 색깔을 금세 찾았다. 김용균씨는 지난해 12월10일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낙탄 제거작업을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탄가루 자욱한 작업장에서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일했던 그는 숨진 지 4시간 만에 발견됐다.

"고 김용균 뜻 이어받아 비정규직 철폐할 것"

김용균씨 유가족과 동료들과 안전보건단체 회원들이 추도식에 참석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위원들도 눈에 띄었다. 특별조사위는 지난 8월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 노동자 직접고용, 2인1조를 위한 필요인력 충원 등 22개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내놓았다. 권고 이행은 더디기만 하다. 현장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고 노·사·전문가 협의회의 직접고용 논의는 공전하고 있다. 이행점검위원회 구성 요구는 확답이 없다.

이준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지회장은 "국민의 삶을 밝히는 전기를 만들면서 정작 용균이는 일터에서 발 밑을 밝힐 최소한의 전기도, 안전장치도 없이 일하다가 홀로 목숨을 잃었다"며 "비정규직 철폐와 위험의 외주화를 외쳤던 용균이의 목소리를 우리 모두가 이어받아 무능한 자본의 눈치만 보는 정부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제대로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될 때까지, 그 법만으로 부족하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다른 법을 만들어서라도 다시 이 자리에서 또 다른 노동자를 호명하고 추모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호소했다.

"이웃을 지켜야 내 가족 지킬 수 있어"

김미숙씨는 시간을 쪼개 장을 보고 손수 만든 갈비찜을 제사상에 올렸다. 갈비찜은 고 김용균씨가 어머니가 만든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김미숙씨는 "내 가정만 지켜서는 내 가족을 지킬 수 없고 이웃을 지켜야 내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달았다"며 "너무 늦어 버린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인들·기업인들은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며 "이런 답답한 현실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맹세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아침에 출근한 내 가족이 건강한 몸으로 다시 돌아오는 세상, 그 길이 바로 용균이 어머님과 여기 함께하신 모든 동지가 바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2020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고 잘못된 죽음을 바로잡는 투쟁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추모객이 고인의 묘역에 헌화하는 동안 고인이 살아생전 즐겨 듣던 나얼의 <바람기억>이 모란공원을 채웠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참여했다. 12월10일 김용균씨의 기일에는 충남 태안군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추도식이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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