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권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다 죽어도 산재급여 나오는데 뭐가 문제냐?”

노동조합원들이 회사 출퇴근 차량 좌석에 안전띠가 없어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자 사장이 내놓은 반응이다. 이후 사장은 등산바지 허리띠를 놔두고는 안전띠를 설치했다며 노조원들을 또다시 우롱했다(2019년 11월25일자 '금속노동자' 기사).

이는 다름 아닌 문구 전문회사 레이테크코리아 소속 노조원들이 겪은 일이다. 실로 안타까운 점은 이 사례가 노조원들이 사장에게 나날이 겪는 온갖 괴롭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들은 2013년부터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사장의 온갖 괴롭힘에 시달려 왔다.

회사가 갑자기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기간제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부당하게 여긴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라고는 하나 정말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 온 중장년 여성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투쟁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회사는 종전대로 고용을 보장하겠다며 한 발 후퇴했지만 이후 회사는 아버지에게 경영을 물려받은 새로운 사장이 나서 노조원들을 본격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사장은 노조원들을 자진퇴사시키려는 목적으로 공장을 서울에서 안성으로 이전했다가 다시 서울로 옮겼으며, 제대로 된 휴게실도 없고 환기도 잘 되지 않는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레이테크 여성노동자들이 겪은 인권침해가 너무 심각한 나머지 ‘KBS 9시 뉴스’ ‘PD수첩’ 등 방송과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됐고, ‘2015년 올해의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될 정도였다.

2016년부터 사장은 노조원들이 속한 포장부 물량을 외주화하고 휴업을 실시하는 등 고용조정을 압박하기 시작하다가 2018년 1월 포장부 폐지를 이유로 노조원들 전부를 영업부로 배치전환하고 올해 4월 전원을 정리해고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9월 정리해고가 부당해고 및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현재 복직이 이뤄진 상황이나 사장은 다시 희망퇴직자를 모집하는 등 재차 정리해고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장은 “과거 공장이전은 조합원들을 솎아 내기 위한 것” “금속노조 가입한 게 아주 벼슬이죠?” “대한민국의 암적인 존재” 등 노조원과 노조활동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언동을 일삼아 왔다.

노동위 배치전환 및 정리해고 구제신청 사건 심판회의에서 사장은 노조혐오 말고는 노조원만을 배치전환하고 정리해고한 납득 가능한 이유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심지어 사장은 해고 기간 임금상당액에 약간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근로관계를 종료하는 내용의 중재안마저 거부하면서 공익위원들을 당혹하게 했다.

구제신청이 인용된 경우에도 사장은 제도의 공백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노조원들의 불이익을 지속시켰다. 원직이 아닌 다른 부서로 복직시키면서 발생한 분쟁상태를 활용해 임금 지급을 회피하는 한편, 다시 새로운 불이익처분을 행하는 식이다.

이쯤 되면 노조혐오 의사를 가진 사장이 체계적으로 사업장 내 노동조합 제거를 추진하고 있다고밖에 달리 볼 여지가 없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현행 노동관계법상 레이테크 사장이 행한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기만 해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텐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관할 고용노동청이 부당노동행위·폭행 등 레이테크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는데 검찰 단계에서도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백번 양보해 다른 건은 그렇다 쳐도 명백한 임금체불이 거의 2년간 지속되고 있음에도 지급여력에 관한 별다른 수사 없이 기소조차 전혀 진행되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덕분에 사장은 노조원들의 자진퇴사를 압박할 목적으로 폭행·폭언 및 모욕·부당배치전환·부당해고·임금체불 등 갖가지 괴롭힘 수단을 거리낌없이 휘두르고 있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와 기소에 들인 노력의 1만분의 1이라도 노동사건에 할애한다면 레이테크 사장의 범죄행위를 당장 끝장낼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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