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 공인노무사(평등노동법률사무소)

그녀가 갑자기 죽기 전까지 나는 그녀의 힘든 삶을 알지 못했다. 25세 배우 설리는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인기와 함께 시샘·비하글에 시달렸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대해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그녀, 노브라가 편하다고 TV에서 말하는 그녀는 멋있었다.

개성 있고 끼 있고 창조적인 청소년들이 틀에 갇히지 않는 연예인을 선망하고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이라면 자기 삶을 주도하고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연예인들이 살아가는 방송시장도 연예인의 삶마저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설리 이후에도 구하라의 죽음이 있었다. 안타깝고 너무나 불쌍하다. 어이없는 판결을 한 판사에게 화가 난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힘든 연예인 활동이란 무엇인가. 화려한 연예인도 소속사 또는 방송국에 전속 계약돼 스케줄에 따라 활동하는 종속 노동을 제공한다. 연예인도 먹고사는 방식에서는 수입에 의해 살아가는 노동자인 것이다. 또 유독 젊은 여성 연예인에게 쏠리는 비방글과 기사. 여성 연예인은 클릭되고, 소비되고, 고통받았다.

소속사는 허위사실을 적시하거나 공공연히 명예를 훼손하는 자들에게 고객이기에, 대중이기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마치 백화점이나 콜센터 사업주가 갑질 고객에 의해 피해당하는 감정노동자들 보호에 소홀했던 것처럼.

설리의 우울증은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노동자가 감정노동에 시달려 우울증 등 각종 정신질환에 이환되는 경우와 마찬가지 경로로 보인다. 갑질 고객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규정도 생겼고, 피해 감정노동자는 산업재해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언제까지 우리가 연예인들에게 “네가 참아. 넌 대중의 반응으로 먹고사는 연예인이잖아?” 하고 방치할 것인가. 연예인도 방송활동을 통해 먹고살아야 하는 노동자다. 더 이상 비하글이 실리지 않게 하는 사회적 조치(악플금지법)와 형사상 범죄행위가 될 수 있음을 고지하고 연예인도 감정적으로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설리와 구하라는 우리 이웃이자 딸이자 친구이자 방송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설리는 세상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삶이 외롭고 힘드시죠? 두 어깨에 힘든 노동을 지고 누구는 부모로서, 누구는 자식으로, 누구는 사회인으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니 얼마나 힘드십니까? 저도 성인으로서 연예인으로서 활동하는 생활인입니다. 대중 앞에 저를 드러내는 것이 낯설고 두렵지만 저를 알리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연예인의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솔직한 제 삶의 단면을 SNS에 올렸는데 왜 지탄받아야 하는 일이 돼 버린 걸까요?”

나이를 먹어 가며 설리의 질문에 공감대를 갖는 나는 설리의 “왜?”라는 질문에 반성하고 설리에게 위로글을 띄운다.

‘설리, 남들이 악성 댓글 다는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댓글 쓰레기는 그들이 책임질 일이에요. 어두운 밤이 설리 탓은 아닌 것처럼. 당신의 죽음에 저도 반성합니다. 나이를 먹어 가며 제가 넘은 산을 여성 후배들이 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노브라가 대세여서 설리가 공격받지 않는 세상, 부담스런 시선에도 당당히 맞서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안 예뻐도 멋있다. 개성이 더 좋다. 인기 없어도 괜찮다, 경쟁에서 밀려나도 살 수 있다, 이런 안정감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다수가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는 안정감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제 탓이고 우리 탓입니다. 미안합니다. 이제 구분짓고 비하하는 데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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