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공직선거법과 사법개혁 관련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를 위해 민생을 저버렸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지난달 29일 패스트트랙 법안의 국회 상정을 막겠다며 민생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해 본회의를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처리를 당부했던 어린이 교통안전법인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과 유치원 3법도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어린이 안전법안을 정치적 볼모로 삼는 패악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비난여론에 말 바꾸는 자유한국당

1일에도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공할 만한 정치기획”이라며 “영화 속 집단 인질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고 자유한국당을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은 여당에 화살을 돌렸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같은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민식이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게 한 건 바로 여당"이라며 "민식이법은 필리버스터 대상도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그날(지난달 29일) 본회의가 열렸다면 민식이법은 통과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본회의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필리버스터를 결정했을 때와는 해명이 다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당시 “오늘(지난달 29일)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며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이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에 따라 계속될 수 있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이 밝힌 전략은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던 민식이법을 비롯해 199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과 사법개혁 법안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최대한 지연시키겠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3일 본회의에 상정될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예정으로, 자유한국당 의원 108명이 모두 참여할 경우 공직선거법 개정안 하나만 두고도 18일간 필리버스터가 가능하게 된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10일까지 표결처리를 막을 수 있다.

같은날 오후 2시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는 결국 무산됐다. 어린이 교통안전법안을 정쟁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본회의 무산 뒤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과속차량에 치여 사망한 민식군의 아버지 김태양씨는 “이미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두 번 죽였다”며 “선거법과 아이들의 법안을 바꾸는 것, 그게 과연 사람으로 할 짓이냐”고 눈물을 흘렸다.

2일 원포인트 본회의 열릴까

여야의 불신은 깊어졌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이날 "자유한국당은 민식이법을 먼저 처리하자고 했다고 주장하는데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반복하면 알리바이 조작 정당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199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먼저 신청해 놓고 여론의 비판에 몰리니 궁여지책으로 내민 게 '민식이법은 우선 처리하겠다. 그러나 나머지 몇 개 법안의 필리버스터는 보장하라'는 것 아니었냐"고 말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원포인트 본회의 제안에는 "필리버스터가 완전히 전제되지 않은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고 민생법안·경제활력법안·비쟁점법안을 처리하자고 한다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195개 비쟁점·경제활력 법안들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이미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놓았기 때문에 제대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어 민생법안을 처리하자는 정신이 지켜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2일 원포인트 본회의를 소집해서 민식이법 등 어린이교통안전법, 유치원 3법, 원내대표 간 처리에 합의한 데이터 3법과 국회법의 민생개혁법안을 우선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패스트트랙 법안들은 앞으로 1주일간 마지막 끝장협상을 통해 여야 간 합의점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