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우리나라 노조운동의 뿌리는 항운노동자다. 그만큼 항운노련의 역사는 깊다. 1949년 3월 대한노총 전국항만자유노조연맹에서 시작해 올해로 70년이 됐다.

올해 9월 치러진 연맹 선거는 70년 만에 이변으로 기록된다. 연맹 역사상 처음으로 부산이 아닌 지역 출신이 위원장에 당선했다. 최두영(55·사진) 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항만에서 해상운송과 육상운송을 중계하는 항운노동자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일자리다. 수출입 물동량 감소와 항만 재개발로 부두가 사라지고 있다. 항만 자동화·무인화 추세까지 빠르게 확산하면서 임금과 노동조건이 저하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9일 인천 항동에 있는 인천항운노조 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최두영 위원장은 "물동량 감소로 항운노동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가만히 앉아서 경기가 좋아지기만 바랄 수는 없는 만큼 노조가 할 일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 경제협력에 주목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인천항과 북한 남포항을 잇는 뱃길은 남북교역의 핵심루트였다. 매주 정기선이 드나들 정도로 남북 간 교역이 활발했다. 최 위원장은 "대북 경협은 항만이 살아나는 기회일 뿐 아니라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연맹에서 남북 간 뱃길을 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노조운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1991년 항운노동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 정부가 주택 200만호 건설사업을 하면서 건설자재 수입이 많았다. 우리나라 첫 번째 수입항인 인천항에 시멘트가 엄청나게 들어왔다. 일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였다. 당시 하역업무 수입이 월 160만원이 넘었다. 대졸 초임이 50만원이던 시절이었으니 돈을 참 잘 벌었다.

26세 무렵 취직했는데 4년쯤 일하다가 노조 집행부 제안을 받고 95년 인천항운노조 쟁의부 차장으로 들어왔다. 말 그대로 밑바닥 생활을 하다가 집행부가 됐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비효율적인 업무나 위험한 노동환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전 문제가 심각했다. 큰 배가 들어오면 조출료와 체선료가 있다. 조출료는 예정보다 선적이나 하역업무가 일찍 끝났을 때 받는 돈이고, 체선료는 예정보다 늦어지면 물어내야 하는 돈이다. 시간이 곧 돈이다. 작업을 서둘러 끝내야 하다 보니 곧잘 사고로 이어졌다. 속이 많이 상했다. 정부에 건의를 하고 사측과 교섭도 하면서 바꾸려고 애를 많이 썼다.

99년에는 연맹 쟁의국장으로 파견을 나가 전국 상황을 접했다. 4년 근무하고 인천으로 다시 내려와 현장 반장도 하고 쟁의부장도 했다. 2005년 항만노무공급체계 개편 논의 당시에는 실무부장을 했다. 올해 5월 인천항운노조 위원장에 취임했다. 9월에 연맹 위원장에 당선해 겸직하고 있다."

- 항운노련 위원장으로는 젊은 편인데.
"물동량이 점점 줄어들어서 최근 10여년 이상 신규인력 충원이 없었다. 인천항운노조의 경우 2005년이 마지막 충원이었다. 새로운 항만이 생겨도 재래부두에 있던 조합원들이 전환배치된다. 조합원 평균 연령이 50대를 훌쩍 넘었다. 세대 구성이 물 흐르듯 가야 하는데, 10년이나 20년이 지난 뒤 어떤 형태가 될지 우려스럽다."

경기악화로 일자리 줄어 조합원 감소
"대북 경협으로 항만 활성화 이끌어야" 


- 최근 해운산업 경기가 좋지 않다.
"항만은 98년 외환위기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안정적이었다. 지금은 굉장히 어렵다. 물동량이 계속 줄어든다. 항만은 경기상황에 매우 민감하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수출입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항만이 직격탄을 맞는다. 건설경기 침체로 항운노동자 인력투입이 많은 벌크화물이 크게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전국 항만 물동량은 12억1천525만톤으로 지난해보다 소폭 증가했다. 반면 컨테이너에 들어가지 않는 비규격 화물인 벌크화물 물동량은 7억8천770만톤으로 전년 대비 0.4%포인트 감소했다. 항만별로는 광양항과 부산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물동량이 각각 2.9%포인트, 2.5%포인트 증가한 반면 인천항과 평택·당진항은 각각 5.5%포인트, 2.6%포인트 줄어들었다.

- 항운노동자들의 형편은 어떤가.
"물동량이 감소하면 일자리도 줄어든다. 항만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라서 감소 폭이 크다. 일부 항만에서는 생계안정지원금을 주고 희망퇴직을 받기도 한다."

- 조합원이 얼마나 감소했나.
"해마다 3%가량 줄어드는 추세다. 3%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게 10년이면 30%에 가까운 인원이다."

올해 기준으로 항만과 연안·농수산시장과 창고 같은 하역물류에 종사하는 노동자 2만2천여명이 연맹에 가입해 있다. 전국에 38개 노조, 310개 지부를 두고 있다. 8년 전인 2011년만 해도 조합원 2만5천여명에 41개 노조·419개 지부가 있었다.

- 정부가 지난달 해양수산 스마트화 전략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완전무인 자율운항선박을 개발하고, 항만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입해 초대형 컨테이너선 처리시간을 현재보다 40% 줄이는 스마트항만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항만 자동화로 작업형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부가 말하는 스마트항만은 결국 무인화 정책으로 가겠다는 말이다. 고용감소 없는 스마트항만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다. 지금도 신항이 만들어지면 재래부두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전환배치된다. 그런데 100%가 전환배치되는 게 아니다. 정부가 신항 개발로 돈을 버는 것에 골몰하고 있다. 고용 문제는 뒷전이다. 현장에서도 갈등이 많다. 기능인력이 사라지고 중앙에서 제어·통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이 과연 생산성을 높이는지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바 없다.
항만은 자연재해에 항상 노출돼 있다. 사람이 하면 변화무쌍한 환경에 맞게 처리할 수 있다. 정부가 말하는 스마트항만은 그런 대처능력이 떨어진다."

- 앞으로 3년간 최두영 집행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 있다면.
"기본에 충실하려고 한다. 노조 본연의 임무인 노동조건 개선과 복지 향상이 기본이다. 향후 10년, 20년 사이에 고용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고령화하는 인력을 어떻게 조화롭게 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물동량 감소에 대응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경기가 좋아지기만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지 않나.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북 경협에 주목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트레이드포춘'이라는 배가 남과 북을 정기적으로 다녔다. 인천-남포 항로에 정기선이 취항한 것이다. 남과 북의 경협은 항만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항운노조 역사성·당위성 있다"
"70년 역사 장점 승계, 단점 개선"
"과감히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겠다"


- 연맹이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연맹 70년 역사 가운데 장점은 승계하고 단점은 개선하겠다.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인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야 한다. 많이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라고 나에게 (위원장) 자리를 준 것 같다. 연맹은 인천과 부산에 항만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기능교육 중심이다 보니 교육을 받아도 실전에서 활용하기 어려운 커리큘럼도 있다. 이런 부분을 과감히 개편하면서 우리가 내려놓을 수 있는 부분은 내려놓고 가려고 한다. 어딜 가나 변화는 쉽지 않다. 예전에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조건이었다. 지금은 욕은 먹더라도 말이라도 꺼낼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욕을 먹더라도 제대로 바꾸겠다."

- 부산에서 부정채용에 관여한 혐의로 전직 노조간부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노사정은 항만인력공급체계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개혁에 나서고 있는데.
"이윤태 부산항운노조 위원장을 믿는다. 분명히 성공한 위원장이 될 것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본다. 부산은 연맹 대의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부산에서 결정하면 연맹 위원장 자리가 정해진다. 그런데 이윤태 위원장이 '이번에 한 번 바꾸자'고 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크고 현장 부담도 클 텐데 중대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긴장을 많이 하고 있다. 연맹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실무적인 역할은 단위노조에서 한다. 단위노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조력하는 데 역량을 집중시키고자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운노조라고 하면 여전히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부정이나 비리는 어느 사회나 가지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완전무결하지 않다. 항운노조만 특별하다는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운노조는 역사성과 당위성이 있다. 여전히 필요한 조직이다. 구태로 취급하고 필요없다는 인식을 버렸으면 한다. 예전에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필요없다고 내치지 말고 같이 고민해 달라. 항운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고 지역발전과 사회발전·국가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함께 열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