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가 영화제작 과정에서 보조출연자를 공정하게 대우하는 협약을 맺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영화제작 현장의 모범사례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27일 노조사회공헌활동연대회의(의장 황원래 한국노동복지센터 이사장)에 따르면 <블랙머니> 제작사 ‘질라라비’와 전국보조출연자노조, 노동복지센터는 영화제작 과정에서 적용하는 ‘공정노동준수협약’을 올해 6월 체결했다. ‘노동존중 사회로 가는 사회공익활동 공동협약서’라는 별칭을 가진 공동협약에는 공급받은 보조출연자에게 노동관계법을 준수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실제 105명의 보조출연자가 공동협약을 적용받고 일했다.

보조출연자는 그간 인력공급 기획사가 공급했다. 기획사가 제작사와 인력공급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기획사가 보조출연자 출연료 중 평균 10%대, 많게는 30%대까지 중간수수료 명목으로 취한다”고 전했다.

<블랙머니>는 달랐다. 기획사 역할을 보조출연자노조가 했기 때문이다. 공동협약에는 “질라라비는 노동관계법을 준수하고 파견용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으로 중간착취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계기관 허가를 받은 적법한 단체인 노조로부터 직접 인력공급을 받도록 노력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중간 수수료가 없어지고, 제작사가 보조출연자를 직접 계약하는 효과를 냈다. 협약 유효기간은 3년으로 정했다. 질라라비가 제작하는 영화 현장에 공동협약을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협약 당사자들은 이를 ‘직접고용’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열린 노동복지포럼에는 이들 당사자들이 참석했다. 황원래 이사장은 “양기환 질라라비 대표가 영화를 제작하며 창작과 예술에도 돈보다 인간이 우선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산업 비정규 노동자 권익과 공정노동을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고 말했다. 문계순 노조 위원장은 “질라라비가 노조와 공정노동협약을 체결하고 영화에 조합원 105명을 보조출연하도록 해 준 일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 사건”이라고 말했고, 양기환 대표는 “한국 영화 제작자들이 노조와 공정노동협약을 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포럼에 참여한 40여개 단체는 <블랙머니>를 ‘꼭 봐야 할 좋은 영화’로 선정하고 노조 사회공헌 활동으로 단체관람을 독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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