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몇 달 전 스스로 삶을 마감한 가수 설리에 이어 얼마 전 가수 구하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자살이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유명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워낙 흔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주변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 몇 명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최근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자살 위험성을 증가시키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성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노년기 우울증도 심각한 수준이다.

국가에서도 이런 현상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다. 지역별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설립해 무료 심리 상담을 하고, 국가건강검진에 우울증 항목을 추가해 선별검사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처음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처음에는 그들이 처해 있는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런 저런 애를 쓴다. 그런 애씀 중 하나가 심리 상담을 받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것이다. 실제로 상담과 진료가 필요한 사람들 중 일부만 받고 있는 것 또한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상담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와 더불어 심리 상담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 본 사람이라면 상담노동의 어려움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상담을 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태도는 공감이다. 공감이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두산백과)을 말한다. 공감을 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에고를 한쪽으로 제쳐 놓는 것이 필요하다. 에고란 “사고·감정·의지 등의 여러 작용의 주관자로서 이 여러 작용에 수반하고, 또한 이를 통일하는 주체”(두산백과)를 뜻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상담자로서의 능력이 함양될 뿐만 아니라 상담자 자신의 인격적인 성숙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담자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고·감정·의지와 무관하게 상담을 해야만 하는 상황, 즉 감정노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종종 경험할 수밖에 없다.

상담자가 정서적·감정적으로 안정돼 있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내담자의 정서와 감정이 상담자에게 전달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내담자가 과거의 중요한 대상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감정이나 환상을 상담자에게 치환하는 이런 현상을 전이 현상이라고 한다. 내담자의 전이에 대한 상담자의 무의식적인 반응인 역전이 현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전이와 역전이 현상은 상담 과정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과도할 경우 상담 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상담자는 상담 과정에서 이러한 전이와 역전이 현상이 나타나는지 잘 인식하고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내담자와 적절한 수준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적절한 수준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될 수 있다.

상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강상 문제가 소진(Burn out)인 것은 이 때문이다. 소진이란 직무스트레스의 한 형태로 스트레스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탈진 상태를 말한다. 소진은 비단 심리적으로 무기력해질 뿐만 아니라 대개는 신체적으로도 다양한 질병을 동반하게 된다. 상담노동을 임금노동으로 하게 될 경우, 즉 상담노동자들의 경우 이런 증상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몇 년 전부터 경기도 초·중·고등학교에 청소년 상담사 선생님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상담사 선생님들은 학생 심리 상담뿐만 아니라 학교 폭력 관련 상담도 하고 심지어 학부모 상담, 교사 상담도 한다. 얼마 전 필자가 근무하는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에서 경기도 화성시 관내 학교 청소년 상담사 선생님들을 모시고 토크콘서트를 했다. 준비 과정에서 직무스트레스 평가를 실시했는데, 직무불안정 항목 점수가 92.2점(50.1점 이상일 경우 상위 25% 수준)으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 결과 선생님들 고용에 관한 책임을 경기도교육청과 화성시가 서로 미루면서 고용불안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청소년 상담사 선생님들은 꼭 필요한 존재다. 학생·학부모·교사들의 만족도도 높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상담노동의 고충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으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그만큼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상담사 선생님들이 고용불안으로 인해 불필요한 직무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도록 공적인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상담사 선생님들이 상담노동으로 인해 소진되지 않도록 적절한 휴식·회복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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