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무기계약 노동자들은 별도의 직군으로 구분돼 임금·승진·경력 측면에서 통상의 정규직과 상당한 격차를 감내하고 있다. 특히 2017년 정부가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 이후 실질적인 처우개선이 함께 이뤄질 것이라 기대했던 다수의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뒤 기존의 차별적 처우가 계속 유지되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무기계약 노동자들의 차별시정을 위한 입법적인 제도 마련은 아직도 요원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차별개선을 기대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다. 실제로 인권위는 “무기계약 노동자의 차별시정 신청권 인정”을 권고하거나, 수차례의 차별진정 사건에서 전향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최근 인권위는 무기계약직 차별시정의 시금석이 되는 ‘동일가치노동’의 범위를 매우 좁게 해석해 엄격한 의미의 ‘동일노동’에 해당하지 않으면 아예 노동자들의 진정을 각하해 버리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현재 무기계약직 차별시정의 기준이 되는 법령은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8조1항으로 여기에서는 명백하게 “동일가치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동일가치노동’의 의미를 매우 한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관의 특성상 사회 변화에 한 발짝 늦게 조응하기 마련인 사법부가 최근 헌법상 ‘사회적 신분’의 의미를 폭넓게 해석해 “전업과 비전업 여부에 따라 시간강사료를 차등 지급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등 변화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점에 비춰 보면 인권위의 소극적인 입장은 아쉽기만 하다. 실제로 인권위는 우리 사회에서 무기계약직 차별 문제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2010년께부터 ① 정규직과 동일 분야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 전환자를 입직경로나 담당업무의 차이를 이유로 사내 근로복지기금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단하거나(인권위 2011. 4. 25. 10진정0572700) ② 도로보수원·과적단속원 등 무기계약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기능직 과적단속 공무원 또는 운전 공무원과 같은 현장에서 같은 목적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볼 수 있으므로 무기계약 노동자에 대한 합리적인 출장비 지급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거나(인권위 2013. 2. 13. 12진정0358100) ③ 위험·기피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에게 장려수당과 위험근무수당과 같은 성격의 수당을 전혀 지급하지 않는 것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인권위 2015. 10. 7. 15진정001090, 인권위 2014. 7. 30. 14진정0209000)하는 등 의미 있는 결정들을 내렸던 국가기관이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는 입직경로, 자격증 보유 여부나 학력 수준, 적용받는 법령 및 취업규칙의 상이,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 같이 근로내용과는 무관한 다른 사정을 이유로 들면서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사건을 각하해 버림으로써 ‘무기계약직은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해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로 그 의미가 굳어지는 데 일조하고 있다. 위와 같은 사정들이 노동시장에서 임금수준에 영향을 주는 요소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구체적인 판단 과정에서 ‘합리적인 이유 있는 차별인지 여부’를 살펴보면서 고려하면 충분한데도 인권위는 아예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이 아니다’고 결론 내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기계약직이 차별을 받는 영역이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중규직’ ‘나쁜 일자리’ ‘무늬만 정규직’ 등 무기계약직의 차별을 상징하는 단어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널리 알려져 있는 내용이 유독 국가기관의 문턱에만 서면 그 실체가 흐릿해져 버린다. 부디 인권위가 기관의 위상과 취지에 걸맞게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판단을 내려 우리 사회의 차별받는 노동자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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