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월요일 오후는 골치다. 매주 화요일자 칼럼 때문이다. 수백 번을 했어도 여전히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느라 머리가 아프다. 책상에 앉은 채 두리번거리며 걸리는 대로 사건기록과 책자 제목을 읽고, 인터넷 포털뉴스난에 노동 관련 검색어를 넣어 보고, 매일노동뉴스를 훑어보고, 노동자와 관련한 이러저런 세상일을 기웃거린다. 어제도 그랬다. 10여일 전에 열렸던 노동법 토론회 자료집을 끄집어냈다가 범민주 진영이 싹쓸이했다는 홍콩선거 뉴스를 찾아보고는, 매일노동뉴스에서 ‘군병력 대체인력 투입’ 고발 등 철도노조 파업 소식에 ‘홍콩은 광주가 아니다’는 윤효원 칼럼까지 읽었다. 제각각 중구난방으로 벌어지는 세상사를 두고서 ‘무엇을 할 것인가’도 아니고, 고작해야 ‘무엇을 쓸 것인가’를 찾겠다고 이리저리 헤매는 나를 본다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오후 6시 마감에 쫓기는 나는 여간 심각하지 않다. 어떻게든 노동으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오늘을 읽어야 하는 게 숙명이라고 여기고 소재를 찾아내서 제목을 ‘한글’문서의 첫 줄에 끄적거려야만 한다. 이렇게 오늘도 내게 반영된 세상사를 읽고 있다.

2. 전태일 49주기를 맞아 지난 9일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그날 여의도대로 대회장에 갔다. 일본 등 여러 나라 노조들이 참석해 연대사를 했는데, 홍콩에서 온 노조활동가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는 “송환법 반대투쟁 속에서 노조 조직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며 “홍콩에서는 점점 많은 노동자들이 민주주의와 노동권을 쟁취하는 투쟁을 위해 자신의 현장에서 노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자의 권리,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민주노총 홈페이지에서 보니 그는 람슈메이(Lam, Siu Mei) 홍콩노총 건설노조 조직활동가였다. 홍콩의 노동자, 노동운동은 송환법 반대투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 연설을 듣고 홍콩의 노동운동이 홍콩의 민주화운동과 함께하고 있다고 알게 됐다. 사회와 권력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함께 전진해 나간다는 것은 이미 1987년 6월 민주화운동과 그 직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이 나라에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홍콩은 광주가 아니다. 1987년 6월 항쟁도 아니다. 역사적으로 홍콩에 자유민주주의운동이 활발했고 홍콩 사태가 민주화 요구로 시작한 것은 맞지만, 미국의 불법적 개입 이후 폭력적인 반중-친미 운동으로 변질됐다”고 쓴 윤효원의 칼럼을 읽었다(매일노동뉴스 2019년 11월25일자).

3. 내가 쓰는 칼럼코너의 제목은 김아무개의 ‘노동과 법’인데, 그 주제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라고 할 수 있다. 20여년 전 법률국장 등으로 노조 소속으로 활동할 때나, 그렇지 않고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지금이나 오로지 노동자를 대리하면서 했던 것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했던 언론 인터뷰와 교육, 연구와 토론, 그리고 상담과 소송은 그걸 빼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로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세상을 본다. 아니 세상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민주니 진보니 갖다 붙여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의 당이든 민주의 정권이든 노동자를 위하지 않는다면 비판했다. 민주투사든, 진보인사든 뭐든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누구라도 그가 얼마나 간절히 민주와 진보를 말할지라도 나는 듣지 않았다. 그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서 실행하는지 아닌지로 구별해 들었다. 이런 식이니 누구라도 내 비난을 피할 수가 없다. 그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하지 않는 한 말이다. '사회주의'나 '노동자세상'을 간판으로 달고 있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는 노동자를 간판으로 내건다고 해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동현장과 사업장에서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로 살펴야 한다고 믿는다. 현장은 그렇지 않은데 노동자를 위한 듯한 간판이나 강령만으로 그 권력을 믿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니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무엇인지로 나는 송환법 반대투쟁의 홍콩 민주화운동을 바라본다. 그리고 홍콩 노동자들이 사회 민주화의 진전만이 아니라 노조 조직 확대를 이루는 것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없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거창하게 말을 해도 아무것도 아니다. 오직 세상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장돼 있는지로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든, 홍콩이든, 아니 중국 본토든 어디든 그렇다.

4. 이렇게 사팔뜨기로 세상살이를 하는 나는 파업이 노동자의 자유니 그 주체·목적·절차 등으로 규제하면서 형사처벌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년을 하고 또 했다. 연구해서 토론하고, 교육하고 소송을 했다. 이달 8일 대법원에서 열린 노동법 세미나에서는 지정토론자도 아니면서, 시간에 쫓기는 세미나임에도 두 주제 발표 모두에 대해 굳이 토론을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두 번째 발표가 파업 관련 주제여서였다. 해당 사업장 근로자가 아닌 산별노조 간부의 사업장 출입에 관한 것이었는데, 파업 중 출입문제도 포함하고 있었다. 노동자가 뭔가를 요구해서 일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파업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파업은 그저 일하지 않는 것일 뿐인데, 만약 이를 두고서 그 주체·목적·절차 등이 어떠해야 한다면서 국가가 처벌을 한다면, 그건 국가가 노동자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논의를 떠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일해야 할 일은 없었다. 즉 일을 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국가가 법으로 그걸 강제하겠다고 하면 그 법과 그 국가가 정상이 아닌 것으로 평가돼야 할 정도로 그렇게 사람은 일하지 않을 자유를 갖고 태어났다. 파업은 바로 이런 자유를 말할 뿐이다. 이런 사람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자’가 됐다고 해서 국가가 법으로 형사처벌로 강제하면서 이런 자유를 박탈당했노라고 할 수는 없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처럼 그런 노동자의 자유여야 한다. 노동자의 쟁의행위가 파업인 한, 자유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이 나라는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주체·목적·절차, 수단과 방법 등 온갖 규제를 통해 파업을 처벌하고 있다. 감히 노동자의 자유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자유는 고사하고 권리로 행사하기도 어렵다. 심각한 것은 결사의 자유 등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에서조차 파업의 자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5. 윤효원은 “80년 광주에서 시위대가 버스정류장에 방화를 하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대학에서 몰아낸 적은 없다. 87년 6월 항쟁에서 시위대가 역에 불을 지르고 매표기를 때려 부수고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고 시위에 나서지 않는 학생들을 대학에서 몰아낸 적은 없다”고 홍콩 시위를 폭력이라 비판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운동은 지지하지만, 냉전 식민주의 체제로의 반동을 꿈꾸는 친미-친영 운동은 지지할 수 없다. 홍콩 사태는 평화적 민주화운동에서 폭력적 친미-친영 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홍콩의 미래는 불행해질 것이며,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는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다. 홍콩 사태는 하루빨리 평화적으로 종결돼야 한다”고 칼럼을 마무리했다.

권력 통제를 벗어나 급격히 고양되는 대중운동이 그걸 통제하려는 폭력적 공권력 행사에 언제나 고결하게 평화적일 수 있을 것인지는 대한민국의 대중운동사가 자세히 보여줬다. 저 80년 5월 광주에서 87년 6월까지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는 그렇게 고결하지 않았다. 수도 없이 보도블럭을 깨뜨렸고, 화염병과 각목이 난무했다. 전두환 독재권력이 폭력이라고 규정지었던 수많은 격렬한 시위를 지나와야 했다. 평화적이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게 평화적이었을 뿐이다. 오늘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친중과 친미로 바라보는 윤효원의 비난에 동조하지 않는다. “냉전 식민주의 체제로의 반동을 꿈꾸는 친미-친영 운동”이라고 홍콩의 운동을 폄훼하고 말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송환법 반대투쟁에서 촉발된 것으로, 반중 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친중이 아니기 때문에 그 운동이 부정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80년 광주는 시민무장으로 수도 없이 비난받았다. 광주를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일당과 그 지지세력이 한 이러한 비난을 넘어 5월 광주는 한국 근대사에서 위대한 민주화운동이 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실 내가 이렇게 윤효원의 칼럼을 읽고 있지만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오늘 홍콩의 운동이 저 87년 노동자대투쟁 앞에 전개됐던 민주화운동처럼 홍콩 노동자의 노조 조직화, 노동운동에 기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인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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