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우리는 갚아야 할 트럭 할부금을 개목걸이라고 불러요. 그것 때문에 화물차 기사는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해요. 한 달에 1천만원을 벌어도 할부금·기름값·톨게이트 비용 빼면 겨우 먹고살아요. 그런데 지난해 12월에 받아야 할 돈 700만~800만원이 안 들어왔어요. 일을 배로 했으니 부대비용도 배로 나가는데…. 그 돈이 안 들어오니 갚아야 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예요.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3년차 화물차 기사 이승엽(50)씨가 겪은 '운수 좋은 날' 얘기를 털어놓았다. 현진건이 그린 1920년대 가난한 인력거꾼 김첨지는 이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17일째 단식농성을 하던 지난 20일 서울 한 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측 조치로 이후 단식을 하지 못하게 됐지만 그는 입원한 뒤 나흘이 지난 24일에도 농성장으로 돌아와 다시 단식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도대체 이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운전하다 죽을까 봐
아내한테 옆에 있어 달라 했다"


이씨의 불운은 지난해 11월 CJ대한통운 용차 일을 하면서 시작됐다. 용차는 화물 운송사가 추가물량을 처리하거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불러서 사용하는 영업용 차량을 의미한다. 당시 CJ대한통운 대전물류센터에는 잇따른 산업재해로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다. 8월에는 감전사고로, 10월 말에는 상차작업 중 사고로 각각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CJ대한통운 전체 물동량의 30%를 담당하는 대전물류센터가 문을 닫자 대전센터 인근에 위치한 경기도 군포·용인과 충북도 청원·옥천 등 물류센터는 아수라장이 됐다. 용차 수요가 급증했다. 당시 개인 차주였던 이씨는 같은해 11월1일부터 20일까지 중개업자를 통해 A운송사에서 물량을 받아 군포물류센터에서 청원물류센터를 오가며 일했다. A사는 CJ대한통운 경기지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있었다.

"군포물류센터에서 청원물류센터까지 왕복하면 5시간 정도 걸려요. 그 일을 하루에 네다섯 번을 했어요. 잠을 한숨도 못 잤죠. 내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아내를 불렀어요. 25톤짜리 화물차를 어디에 세우겠어요? 잠깐 차를 세우면 아내가 김밥 한 줄이라도 사 오고, 차 안에서 라면 끓여 먹고, 졸음운전을 하면 깨워 주고…. 그렇게 20일을 살았죠."

이씨는 용차 일을 마친 다음달인 12월18일 그와 계약한 A사에서 돈을 받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운행한 기록을 꼼꼼히 기록해 넘겼는데도 생각보다 700만~800만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는 군포에서 청원까지 한 번 왕복하며 화물을 운송하는 대가로 35만원을 받기로 했지만 A사는 절반 수준인 19만원만 지급했다. 아예 횟수 자체가 누락된 경우도 있었다. 이씨는 운수사에 누락된 운임을 입금하라고 요구했지만 올해 4월이 될 때까지 미지급 운임은 지급되지 않았다.

"누락 운임비 지급 요구하자
CJ대한통운은 모르쇠"


운임 미지급에는 CJ대한통운의 수수방관도 한몫한 듯하다. 지난 5월 A사 대표는 이승엽씨에게 전화로 되레 이렇게 토로했다. "저희는 이렇게 받기로 했는데 근데 지금 씨제이(CJ대한통운)에서 안 주는 거잖아요. (…) 다른 사람을 통해 이렇게 해 준다고 했는데, 씨제이가 누락을 했는지 뭘 했는지 계속 안 주는 거예요. 우리도 계속 이야기해요. 그런데 안 주니깐….".

통화 내용에 따르면 A사는 이씨의 문제제기에 CJ대한통운 경기지사에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등 문제를 제기했지만 CJ대한통운 경기지사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CJ대한통운 본사는 옛날 일을 이제 와서 이야기한다고 외려 A사 관계자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결국 이씨는 지난해 12월18일 받았어야 할 운임을 5개월이 넘은 올해 5월23일에야 모두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그날로 이씨는 일이 끊겼다. 다른 일을 구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동료에게서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CJ대한통운 본사 앞에 올라와 농성을 하게 된 배경이다. 이씨는 현재 자신이 일하지 못한 시간 동안의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불합리한 일 당해도
문제제기 못하는 화물차 기사들"

당시 피해자는 이승엽씨만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현장에서 이씨와 함께 일하던 한 화물차 기사는 "실제 받기로 했던 운임보다 적게 받거나 일부 운임이 누락되면서 문제제기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다"며 "다만 화물차기사들은 당장 하루 벌어먹고 사는 입장이다 보니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협력업체와 기사 간의 다툼"이라고 선을 그은 CJ대한통운 관계자는 "(줘야 할 운임비를) 안 줬으면 협력사에서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이라며 "누락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고 그때 당시는 (화물차를) 중구난방으로 다 모으다 보니 체크를 못한 관리부실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쪽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고 어느 정도까지는 합의가 이뤄졌다"며 "계속해서 중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화물차 기사(개별차주)는 화주-운송회사-주선사업자-개별(지입)차주로 이뤄진 화물운송업계 구조 최하단부에 위치한다. 배차 권한을 지닌 운송회사나 주선사업자에 밉보이는 순간 일감을 받기 어려워진다. 매달 300만원이 넘는 차량 할부금을 감당하려면 일을 하루 쉬기도 부담스럽다. 동료를 통해 일을 구하고 구두계약만 믿고 일을 하는 바람에 부당한 일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그냥 넘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열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화물차 시장에서) 구두로 계약하거나 계약서를 잘 쓰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며 "거래관계가 투명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텐데 물류기업은 어떻게든 물류비용을 감축하려고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록은 안 하고 속이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운송사가 화물차 기사를 직접고용했지만 이후 외주화하면서 밑으로 비용을 계속 전가하는 구조가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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