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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용식 일본 단바망간기념관 관장] "일본에서 기념관 지키기, 2019년의 레지스탕스"재정적자로 폐관 위기 일본 유일 강제동원 기념관 … "일본 가해역사 현장 직시해야"
▲ 정기훈 기자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일제의 강제동원 역사도 그렇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한 일제는 '모집·관알선·징용'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조선인을 착취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강제로 끌려가 희생됐는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얼마인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80여년이 흐르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기억은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일본 교토시에 있는 단바망간기념관은 일본에서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기록한 유일한 기념관이다. 그런데 이곳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일제 때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3천여명이 망간을 캐던 광산이었다. 망간은 전차나 총포 같은 무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강제동원 조선인 광부들의 피와 눈물로 지어진 광산은 1977년 폐광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단바망간광산에서 일했던 조선인 노동자 고 이정호씨는 평생 모은 재산을 쏟아부어 광산을 사들였다. 그리고 89년 일본의 강제동원 역사를 증언하는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현재는 그의 아들 이용식(60·사진)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기념관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문을 닫았던 적이 있다. 심각한 재정문제 때문이다. 기념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연간 500만엔(약 5천400만원)이 필요하다. 기념관은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로부터 단 1원도 지원받지 않았다. 오로지 기념관 방문객 입장료 수입만으로 운영한다. 최근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인 관람객이 급감하면서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더 이상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어 올해를 끝으로 폐관한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서 이용식 관장을 만났다. 한국노총은 단바망간기념관 폐관을 막기 위해 후원행사를 마련하고 이용식 관장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이 관장은 "일본은 가해의 역사를 전혀 기록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다"며 "일본에서 가해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야말로 일본을 위한 일이자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가해역사 알리는 것은 일본을 위한 일"

이용식씨는 아버지처럼 광산노동자였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광산에서 10년을 일했다. 86년 아버지가 처음 "단바망간광산을 강제동원 노동자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그는 반대했다.

"오사카에서 일하고 있을 때 아버지한테 전화 한 통을 받았어요. 단바망간기념관을 세우겠다고.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기념관 만들 돈이 있으면 노후를 위해서 아껴 두시다 장례비용으로 쓰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금방 죽을 테니 노후자금은 필요없고 장례도 치를 필요 없으니 그 돈으로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하셨어요. 진폐증으로 고생을 하고 계셨거든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한국이 보이는 바닷가에 뿌려 주면 된다면서요. 기념관을 두고 아버지는 '나의 무덤이자 우리의 무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이루기 위해 온 가족이 기념관 일에 뛰어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매달렸지만 기념관 건립은 녹록지 않았다. 가족들은 불도저와 포클레인을 직접 몰고 산골짜기에 있는 기념관까지 도로를 냈다. 폭이 90센티미터에 불과한 갱도 입구를 관람객이 들어올 수 있도록 2미터로 넓히기 위해 파고 또 파냈다.

고 이정호씨와 이용식 관장은 기념관을 만들 때 일본 교토시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관장은 "재일동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조선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이 관장의 설명이다.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차별을 받고 삽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마땅히 누리는 인권이 재일동포에게는 없어요. 교육받을 권리도, 선거권도 없죠. 일본에 이렇게 많은 조선인과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일본인들이 왜 그러는지 이유조차 모릅니다. 강제노동 역사 현장 위에 세워진 단바망간기념관은 그런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어요."

이 관장은 "아버지가 만들고자 했던 단바망간기념관은 일본에 대한 레지스탕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강제동원 역사 모르는 일본인들
"거짓 기념관 만들었다" 항의·협박도


기념관 건립 이후에도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기념관에는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들의 기록을 보관한 전시관과 조선인 광부들이 숙식했던 함바집, 일하던 갱도를 재현해 놓은 시설물이 있다. 가혹한 노동으로 처참했던 조선인 광산노동자의 참상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일본 우익단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협박성 전화와 이메일을 보냈다. 그저 옛 광산의 모습을 재현한 기념관인 줄 알고 찾아왔던 일부 일본인 관람객들은 화를 내며 떠났다.

"일본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말하면 '반일'로 이해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요. 학교에서도 언론에서도 일제의 가해 역사는 말하지 않거든요. 강제동원 사실조차 모르는 일본인들이 많습니다. 일본 우익단체들은 '거짓말로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나가라' '꺼져라' 같은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어요."

이 관장은 그런 일본인들에게 "일본에 원폭기념관을 짓고 추모하는 것이 반미냐"고 되물었다고 했다. 그는 "단바망간기념관은 일본을 위해 좋은 일이고 평화로 가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관은 일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곳이 아니라 과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곳이에요. 일본이 자신의 가해역사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결국은 일본에 득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일관계 얼어붙자 관람객 발길 끊겨
어머니 연금으로 유지한 기념관 존폐 기로에


기념관 건립에 평생을 바친 고 이정호씨는 개관 6년 만에 진폐증으로 숨을 거뒀다. 이 관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기념관 문을 닫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 유지를 받들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며 "그런데 올해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기념관 운영이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하면서 기념관 방문객의 70%를 차지하던 일본인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2008년 5천200여명이 찾았는데, 지난해에는 700여명이 관람하는 데 그쳤다. 이 관장은 "기념관 연간 유지비 500만엔 중 어머니가 연금 200만엔을 기부하셔서 겨우 운영을 할 수 있었는데 올해 9월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막막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을 접한 한국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재정을 후원하기 위해 두 팔 걷고 나섰지만 이 관장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는 "올해 60세가 됐고 지병으로 몸이 힘들다"며 "솔직히 은퇴할 생각도 있기 때문에 후원행사가 마냥 기쁘지마는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 관장은 "제 뒤를 이을 젊은 인재를 육성하지 못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관장과 그의 가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30년을 지킨 일제 강제동원 역사의 현장 단바망간기념관. 이제는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하지 않을까.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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