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20.9.25 금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연재칼럼 김형탁의 시절인연
봉제인공제회 창립을 기뻐하며
▲ 김형탁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11월17일 봉제인공제회 창립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지난해 11월27일 화섬식품노조 서울봉제인지회가 결성된 지 1년 만에 공제회가 만들어졌다. 화섬식품노조에서 기획한 공제회를 통한 노동자 조직화 모델이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봉제인공제회는 지회 조합원으로 구성되며, 정관에 따라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이 공제회 이사장을 맡는다. 향후 공제회 규모가 커지게 되더라도 노동조합에 기반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성격을 가진다. 이사는 화섬식품노조 추천이사 5명, 지회 추천 5명, 외부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다. 봉제인공제회는 내년부터 조합원 긴급자금대출과 상조 지원부터 시작해 점차 상호부조사업·적립형공제·보험형공제까지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공제는 사고나 질병 등 어려운 일을 당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부담을 개인 책임으로만 맡기지 않고 회원들 상호 간에 서로 돕기 정신으로 부담을 나누기 위해 미리 일정한 금액의 돈을 적립해 위험에 대비하는 것을 말한다. 부조나 부의가 일이 생긴 이후에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행위라면, 공제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일정한 기금을 적립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인 곤란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고래로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지만, 조합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실현한다는 것에 공제의 특징이 있다.

상부상조와 연대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공제회가 역사적으로 사라지거나 약화된 데에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작용했다. 먼저 영리 상업보험회사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초기 공제조합은 연령 등 조합원 조건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부금을 책정했다. 이러한 사정은 연령이 낮거나 건강한 조합원에게는 일정한 불만으로 작용했다. 영리 보험회사는 이러한 불만을 파고들어 시장을 세분화해 연령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고, 과거 병력이 있는 사람은 인수를 거절하는 등 보험가입자 사고 위험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폈다. 보험사와의 경쟁에 직면한 공제조합은 불가피하게 동일부금 원칙을 완화하거나, 조합원 이탈로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로 인해 고령자나 위험등급이 높은 사람은 사고가 발생해도 위험을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 각국은 대대적으로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고 건강보험을 비롯해 국가에 의한 사회보장정책을 실시했다. 민간영리보험회사에 의해 위험을 보장받을 수 없는 국민은 국가에 의한 보편적 복지시스템에 의해 보장을 받게 됐다. 사회보장정책 실시는 조합원 스스로에 의한 공제 의미를 축소시켰다. 다만 사회보장정책은 나라마다 특수한 형태를 가지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국가에 의한 의료보험사업의 대부분을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공제조합이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나라에서는 공제조합이 사라지고 상호보험회사를 설립하거나, 새로운 사업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본의 경우는 협동조합형 공제로 지금까지 상당한 규모로 성장했다. 전노제(전국노동조합공제회)는 렌고(일본노총)를 기반으로 '국민공제'로 불릴 정도가 됐다. 전노련공제는 내셔널센터인 전노련의 중심 사업이다. 규모가 있는 공제의 경우 동일부금 방식을 취하지 않고, 보험계리 방식을 활용한 부금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공제는 사업비가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영리보험회사와의 경쟁에서도 가격 경쟁력 우위를 보이고 있다. 다만 지나친 세분화는 공제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에 동일부금 원칙을 가급적 유지하고 있다. 급부의 지급에 있어서도 까다로운 심사로 보험금 지급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보험회사와 달리 조합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공제조합은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적어 지급절차가 간단하고 신속하다.

영리 보험회사와의 경쟁과 국가 사회보장정책으로 공제조합 위상이 낮아졌지만, 신자유주의 공세로 각국의 사회보장정책이 후퇴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어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공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심이 필요하다.

봉제인공제회는 비록 노동조합의 조직화 모델로 출발했지만 공제 자체에 대한 노동계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노동형태의 등장이 기존과 다른 조직방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 외에도 노동자들의 생활 자체가 바닥을 향한 질주를 하고 있어 노동자 스스로의 연대와 상부상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전태일다리에서 전태일50주기준비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전태일 정신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겠지만, 차비를 털어 배 주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나눈 마음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그건 자선이 아니다. 가진 것 없는 이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전하는 마음은 나눔이라고 표현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노동자들의 공제 역시 나눔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htkim82@gmail.com)

김형탁  labortoday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형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