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자회사 정책 피해증언 기자회견 자리에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한국철도공사 자회사 노동자·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피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는데, 자회사로 전환된 지금 모습은 회사 이름 말고 달라진 게 없습니다. 원청은 그대로 한국도로공사예요. 인력수급만 하던 용역회사와 뭐가 다르죠?"(ex service새노조)

최근 도로공사 요금수납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 노동자들이 공사를 상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손쉽게 선택하는 자회사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공공기관들은 "자회사 정규직"이라고 선전하지만 노동자들은 "처우나 고용이 용역업체 소속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도로공사서비스로 간 노동자들은 "임금 30% 인상이라고 하지만 복지포인트 40만원과 상여금 100%를 제외하면 기존 급여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반면 모기관인 공공기관에는 자회사 '지배권'과 함께 고용상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면제권'까지 주어진다. 자회사는 주인만 바뀐 용역업체, 자회사 노동자는 소속만 바뀐 간접고용이라는 성토가 나온다.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방안'은 어디로?

20일 민주노총에 따르면 정부가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과 지난해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관련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 및 운영모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공공기관이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용역계약 형태의 운영이 아닌 공공성과 종사자 고용안정이 담보되는 조직, 독립성이 보장되는 경영, 종사자 서비스 역량 강화·합리적 임금 승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한데 자회사로 간 노동자들의 처우는 이 같은 원칙에 배치된다. "자회사로 가면 고용이 안정된다"는 말과 달리 고용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자회사 계약에 포함된 계약해지 조항들이다. 모기관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지, 예산 감소나 미확보, 정부 정책 변화를 계약해지 사유에 포함시킨 공공기관이 여럿이다. 신용보증기금·여수광양항만공사·그랜드코리아레저·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등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중소기업은행·중소기업유통센터·중소기업진흥공단은 '자회사 쟁의'를 계약해지 사유로 못 박았다.

엄진령 전국불안정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자회사가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정부의 선전은 이런 계약구조 내에서 해명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갑도 이강래, 을도 이강래, 독립적 자회사 맞나"

공공기관 자회사들은 "용역업체"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자체 수익사업을 고안한다. 그러나 모기관의 관리·승인을 받아야 한다. 엄진령 상임집행위원은 "때로는 자회사가 모기관이 떠넘기는 적자사업을 맡아야 할 때도 있다"며 "모기관이 사업을 떠넘기면 떠넘기는 대로, 빼 가면 빼 가는 대로 용역계약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공사 자회사인 도로공사서비스는 모든 수입이 공사와의 용역계약에 따라 결정된다. ex service새노조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대리한 신인수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이강래 공사 사장이 도로공사서비스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다"며 "양측 간 용역계약서를 보면 갑도 이강래, 을도 이강래다. 사실상 이강래 사장이 계약단가와 인건비를 결정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신 변호사는 "이강래 사장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데, 이게 정부가 말하는 독립적인 자회사냐"고 반문했다.

이날 오전 공공부문비정규직파업위원회 등 주최로 서울 정동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의 자회사 정책 피해증언 기자회견'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미 확인됐듯이 자회사는 또 다른 용역회사"라며 "정부는 비정규직 차별수단이 된 자회사 정책을 폐기하고, 인력공급형 자회사는 모기관이 직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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