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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기사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처음 나왔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던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판결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만큼 이에 걸맞게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 "대리운전기사와 업체는 사용종속관계"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1부(재판장 서정현)는 지난 14일 손오공·친구넷 등 부산지역 대리운전업체 2곳이 부산대리운전산업노조 조합원 3명을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업체들은 대리운전 접수·기사 배정에 필요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대리기사 3명은 두 업체와 각각 계약을 맺고 운전 업무를 했다. 지난해 12월 이들 중 한 명이 부산대리운전산업노조를 설립한 뒤 두 업체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업체들은 "대리기사들은 독립적으로 영업을 하는 사업자일 뿐 노동자가 아니다"며 교섭을 거부하고 법원에 근로자지위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대리기사들이 이들 업체와 사실상 사용종속관계에 있고, 근로를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이나 기타 수입을 받고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가 맞다고 봤다. 대리운전 업무 내용, 대리운전 업무수행에 필요한 시간, 우선 배정방식에 의한 대리기사 배정, 수수료 책정 방식, 복장 착용, 교육의무 부과, 업무지시 등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대리기사들이 업체들과 사용종속관계를 맺고 지휘·감독을 받으며, 근로를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기타 수입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노조법은 전속성과 소득 의존성이 약한 측면이 있다고 할지라도 특정 사업자에 대한 소속을 전제하지 않고, 고용 이외의 계약 유형에 의한 노무 제공자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근로자를 정의하고 있다"며 "교섭력 확보를 통해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조법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대리운전기사들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부여해 소모적 논쟁 없애야"

사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 3권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행정법원이 CJ대한통운 대리점주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요구사실공고 시정명령재심결정취소 소송에서 택배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택배기사들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하고, 노조를 설립해 사용주들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다. 그간 CJ대한통운과 대리점들은 "택배기사는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며 택배연대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지방자치단체도 특수고용 노동자가 만든 노조에 설립신고증을 내주고 있다. 대리기사들이 만든 노조의 경우 서울시와 부산시가 지난해와 올해 설립신고증을 발부했다. 서울시는 18일에는 서울지역 라이더유니온에 노조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정부와 국회가 특수고용 노동자 노조할 권리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법·제도 개선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사법적 판단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다툼의 소지가 있다"며 "예컨대 택배기사들의 경우도 1심 재판부는 택배노조를 (CJ대한통운의) 교섭 대상자로 봤지만,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사용자 입장에선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 가며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사용종속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특수고용직을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해 이들을 공식적인 노사관계로 편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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