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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규칙 변경과 계약 자유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소송을 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온갖 소송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순 없겠다. 노동사건 재판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하긴 사용자를 대리해서 하는 로펌의 아무개 변호사가 이 말에 공감할 리가 없다. 그러니 노동자를 대리해서 노동사건의 소송을 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있다고 말해야겠다. 그래서 재판부에 제출하는 서면에 이런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1심 법원에서부터 이 사건 소송을 대리한 원고 소송대리인인 내가 “기본적인 노동법리에 근거한 주장”을 했음에도 “이에 대한 몰이해로 잇달아 그릇된 판결을 선고하는 우리 법원에 크게 낙담했다”고 대법원에 상고이유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주 이렇게 썼던 사건에 관해 대법원이 원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파기환송을 판시했다(대법원 2019.11.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2.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의 판결이유는 1심에서부터 내가 반복했던 주장이었다. 준비서면·참고서면에 쓰고, 항소이유서·상고이유서에 썼다. 노동자가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서 정했는데, 사용자는 과반수노조 동의를 거쳐 회사 규정을 변경해 정년을 몇 년 앞두고 기존 임금을 순차적으로 감액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적용했다. 이것이 지방공기업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임금을 삭감당한 노동자가 내 의뢰인인 원고였다.

정년연장에 관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의 2016년 시행을 앞두고 많은 사업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정부가 그 도입을 관리·점검했던 터라 빠짐없이 도입됐다. 당시 사업장마다 사용자가 노조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회사 규정 변경에 동의하라고 압박했다. 박근혜 정권하에서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가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 등 업무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했다. 권력이 노골적으로 사용자 자본을 편들었다. 도대체가 근로기준법 94조는 무기력했다. 분명히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과반수노조가 있으면 그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은 사용자가 취업규칙(회사 제 규정)을 변경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것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법상 정년보다 긴 정년연장을 보장받고서 노조가 동의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법적으로 당연히 보장되는 정년(60세)을 사업장에서 보장받는 것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굳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하지 않아도 그 정년이 보장되는 것이었음에도 동의했다. 근로기준법이 집단적 동의를 통해 사용자가 노동자에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려는 것을 규제하고자 했던 것이, 노조의 무기력한 대응으로 노동자 권리보호에 무용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취업규칙 변경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 94조는 내 의뢰인인 노동자의 것이 되지 못했다. 소송에서 피고 사용자는 과반수 동의를 거쳐 유효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했노라고 반복해서 주장했다. 근로기준법 94조가 자신을 위한 것인 양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이 없다며 이 노동자가 체결한 계약을 내세워 주장할 수밖에.

3. 아무리 이 세상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에 종속돼 일하는 자라고 해도, 그래서 사업장에서는 자유 없이 사용자에게 복종하는 자라고 해도,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계약 체결은 자유다. 임금·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관한 근로계약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자유로이 체결해야 한다. 노동자라고 해도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사용자에 복종해 일해야 하는 노예는 아니다. 그러니 노동자도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는 자유인인 것이고, 적어도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는 자유여야 한다. 근로기준법이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근로관계에 관해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 형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를 확인한 것이다(2조1항4호, 4조). 이에 따라 다른 계약과 마찬가지로 당사자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개별적으로 근로계약 체결로 근로자의 임금 등 근로조건 기준이 정해지게 된다. 여기에 더해 헌법은 노동자가 노동조합 등으로 단결해서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으로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집단적으로 그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33조).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이렇게 노동자에게는 근로계약 내용인 자신의 임금 등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합의로 정할 자유가 보장된다. 아무리 권력이 사용자편을 들어 법적으로 노동자를 무시해도 이런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 제도를 두고 사용자가 사업장 근로자의 근로조건과 복무규율 기준에 관한 준칙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93조 이하). 이러한 취업규칙 제도는 근로계약관계에서 한 당사자인 사용자가 작성·변경 권한을 가진다. 그러니 취업규칙의 근로조건 기준을 다른 당사자인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사업장 근로자 모두에 통일적으로 적용할 기준을 준칙으로 정해 둘 필요가 있어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 제도를 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근로관계 당사자 합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한계를 분명히 하고서 근로기준법이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을 넘어서는 해석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취업규칙은 법령이나 “단체협약과 어긋나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96조),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에 “그 부분에 한해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97조). 이는 취업규칙상 기준과 근로계약 내용에 관한 근로기준법 97조는 당사자 사이의 자유의사에 의해 체결하는 근로계약이 취업규칙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만 그 부분은 무효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 경우, 즉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조건이 취업규칙 기준을 상회하는 경우에는 무효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근로계약이 정한 바에 따라야 한다. 과반수노조가 동의해 줬다고 해서 취업규칙이 적용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체결한 근로계약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취업규칙은 그 노동자에게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노동자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4. 취업규칙 제도로 사용자는 사업장에서 군주로 군림했다. 이 나라에서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이 정한 취업규칙 제도를 통해 자유 없는 노동자 위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했다. 사업장에서 근로조건 기준 및 복무규율 등에 관한 일체의 회사 제 규정을 말하는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그 제정·변경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노예로 취급할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규정 해석을 통해서였다. 그동안 법원 판결을 통해 사업장에서 취업규칙은 법으로 군림했다. 근로계약 체결에 관한 노동자의 자유를 빼앗고 사용자는 노조를 윽박질러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았다. 취업규칙이 과반수노조 등 집단적 동의를 받아 불리하게 변경됐다고 해도, 그래서 적법·유효한 것이라고 해도 취업규칙으로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을 수 없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 법원만을 두고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활용해야 할 노조가 그러지 못했다.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해 주고서 그 취업규칙을 적용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는 사용자의 행위를 방관했다. 아니다. 자신이 동의해 준 탓인지 사용자에 동조하고, 심지어 사용자를 옹호하는 행동을 했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취업규칙, 즉 회사 제 규정에 의해서 사용자가 정해 주는 것이 돼 버렸다. 노조가 있어도, 없어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근로기준법이 정한 대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노동자를 위해 노조가 동의해 주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규제하는, 수많은 회사 제 규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근로계약도 단체협약도 아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는 거의 다 회사 제 규정에서 정하고 있다. 노조가 있어도 기껏해야 100개 조항 남짓한 '앙상한 단체협약'이 체결돼 있을 뿐이다. 회사 제 규정은 최소 10배 이상이다. 이 지경이니 오늘, “취업규칙이 집단적 동의를 받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4조가 정하는 근로조건 자유결정의 원칙은 여전히 지켜져야” 하고, “변경된 취업규칙 기준에 의해 유리한 근로계약 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우선해 적용된다”는 대법원 판결이유가 새롭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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