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국 변호사(정의당 노동인권안전특위 위원장)

지난해 2월28일 국회를 통과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시간 상한제가 시행 1여년 만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탄력근로제 확대입법 연내처리에 합의한 데 이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혹은 ‘특별연장근로 인가요건 완화’ 등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 52시간 상한제를 법제화한 것은 세계 최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연 1천800시간대 노동시간 임기 내 실현”이라는 대통령 공약에 따른 것이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노동시간은 1천759시간, 한국 노동시간은 2천24시간이다. 한국 노동자가 무려 265시간을 더 일한다.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무려 1.5개월가량을 더 일하는 셈이다. 저녁 있는 삶,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획기적인 단축이 필요했던 것이다. 더욱이 실노동시간 단축은 생산성 증대를 감안하더라도 인력 증원을 불가피하게 하므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매우 유력한 방안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정부 스스로 주 52시간으로의 단축시 시행 첫해에 1만8천500명, 5년간 14만~15만명의 고용창출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시행 1여년 만에 노동시간단축 입법취지를 무로 돌릴 수 있는 정책이 ‘유연근로제’라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입법은 물론이거니와 불규칙 노동의 위험이 높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혹은 장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 요건 완화를 수용하려 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업무 시작과 종료 시각을 특정하지 않고 노동자 재량에 맡기는 대신 일정한 정산기간에 대해 노동시간을 총량으로 규제하는 제도다. 근기법에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1개월로 한정한다. 1개월 내에서 1일 근로시간이나 1주일의 근로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1주간 평균해 법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만 초과하지 않으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필요도 없고 형사처벌도 받지 않는다. 예를 들면 해당 월의 역일이 30일인 경우 월 총 근로시간이 171.42시간(40시간*30일/7일)을 초과하지 않으면 1일이나 1주일 근무시간이 고무줄이어도 상관없다. 문제는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산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면 1일과 1주간 근무시간은 혼돈 상태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 1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을 할증수당 없이 생산량에 따라 자유롭게 노동자를 부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시간에 대한 재량은 사업주에 의해 좌우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바쁠 때는 밤새워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단시간만 일하게 하면 된다. 6개월간 총 근로시간만 맞추면 연장근로수당은 발생하지 않고 불규칙 노동을 상시화할 수 있다.

특별연장근로는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를 일정한 요건하에서 더 연장할 수 있는 제도다. 근기법에 따르면 상시 30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는 다른 조건 없이 근로자대표와 서면으로 합의만 하면 주 12시간 연장근로에 더해 1주간 8시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53조3항). 또한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주 12시간 연장근로에 더해 제한 없이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같은 조 4항).

주 52시간 상한제를 정착시키려면 1주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를 매우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1주 12시간을 초과하는 특별연장근로를 하려면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 근기법 시행규칙은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자연재해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른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연장근로를 피할 수 없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근기법 시행규칙은 근기법 취지에 부합하도록 특별한 사정을 제한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18일 중소기업의 여력 부족과 불투명한 경기상황을 이유로 "근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내년 1월부터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에 주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가 시행되는 것과 관련해 "탄력근로제 개선 입법이 되지 않으면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노동부는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 시에만 가능한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에 대해서도 특별연장근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일시적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는 생산현장에서 다반사로 발생한다. 사실상 특별연장근로 제한을 없애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 혹은 특별연장근로 요건 완화는 주 52시간 상한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근기법의 취지를 뒤엎어 버리는 노동정책이다. 노동시간단축 문제는 수많은 노동조건 중에서도 ‘임금’과 함께 노동자 일상생활에 밀접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시간단축 보완책으로 추진하는 유연근로제 정책은 일자리 창출은커녕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부정하고 과로사를 조장하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18세기 자유시장경제 원조로 알려진 애덤 스미스는 "일주일에 나흘 일하면 사흘은 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6일 독일 최대 노조인 IG메탈(금속노조)과 남서부금속고용주연맹이 주당 노동시간을 기존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이에 비해 주 52시간 상한제조차 무로 돌리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얼마나 퇴행적인가. 주 52시간을 연간 노동시간으로 계산하면 2천711시간이나 된다. 도대체 우리 기업들은 이 시간 이상으로 얼마나 더 일을 시켜야 만족할 텐가. 일과 삶을 조화시키겠다던 노동존중 사회는 립서비스였는지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묻고 싶다. 퇴행적 반노동정책을 즉각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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