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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자본주의의 환상
▲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감옥에서 나온 이후 경영의 근본적 변화를 내세우더니 최근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전도사’가 돼 있다. 그는 지난 9월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 행복을 확산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사회적 가치는 일자리 창출·세금 납부·교육 제공·친환경재료 사용 등을 통해 다양하게 창출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국 재벌뿐 아니라 초국적기업 최고경영자들도 요즘 부쩍 ‘사회적인 것’을 내세우고 있다. 8월19일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이 성명을 발표했다. 주요 대기업 CEO 181명은 성명에서 BRT가 기존에 기업목적으로 명시한 ‘주주들을 위한 가치 극대화’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으며, 앞으로 기업목적은 모든 이해당사자를 위한 가치창출이 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일견 신선한(?) 움직임들은 자본의 대리인인 최고경영자들이 갑자기 인간성이 좋아져서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을 바꿨기 때문일까? 그들 모두로 하여금 인간성이 좋아지게 만든 특별한 경제외적 이유가 없으니 경제적 이유가 그들로 하여금 말과 생각을 바꾸게 했을 것이다. 어떤 경제적 이유가 그런 작용을 했을까. 곳간에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경제적 가치 추구가 아주 잘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너그러워져서인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더 이상 경제적 가치, 즉 잉여가치(이윤)만을 추구하겠다고 나설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됐는가? 자본주의 위기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더 심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저항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런 목소리는 그들의 인간성이 회복된 모습이 아니라 반사회적으로 탐욕을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주는 모습, 그런데도 그것을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자본의 경제적 대리인들만이 아니라 자본의 정치적 대리인인 정치인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은 부의 재분배를 거론하면서도 자본주의 기존 틀은 그대로 유지하는 공약을 내걸어 왔다. 그러나 내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두그룹에 들어와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과감하게 기존 자본주의 틀을 깨는 ‘리셋’을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증세와 아마존 등 IT 대기업들에 대한 해체 또는 규제 강화, 대형은행들의 분사, 이산화탄소 배출량 단계적 감소와 제로(0)화,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와 민간의료보험 금지, 대학의 영리운영 사실상 금지, 대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최소 40%를 노동자 대표로 선임 등 급진적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하나의 계획(A plan for American capitalism)’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워런을 이렇게 평가했다. “일부 공화당원과 월스트리트 비평가들은 워런이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그녀는 기업의 공적소유나 신용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녀는 민간부문이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강제하는 조절을 선호한다. (…) 하지만 그녀의 계획 전체가 실행된다면 미국의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은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리셋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하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는 자본주의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2010년 유럽 각국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면서 세계 자본주의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매일경제>는 과격하게 <다보스포럼, 자본주의를 버리다>라는 책을 펴내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다보스포럼이 진짜로 자본주의를 버리기로 한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이 기조였다. 그래서 그 포럼 이후 종래의 서구식 자본주의 모델이 아닌 다른 모델을 채택해야 한다는 논의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빌 게이츠가 2008년 이 포럼의 기조연설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기업활동을 하자며 제창한 ‘창조적 자본주의’도 있었고, 페이스북 소유자 저커버그가 실행한 ‘자선 자본주의’도 있었으며, 심지어 ‘산촌 자본주의’도 있었다. 그런 것들 가운데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것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였다. 요즘 BRT 같은 미국 최고경영자들이나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언론이나 워런 같은 정치인들이나 모두 이것과 비슷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실은 사회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2008년 미국발 금융·경제공황 이전부터 학자들에 의해 주장됐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집권했음에도 신자유주의가 관철됐으므로 보편적으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이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미국이나 한국 같은 전면적 자유주의 경제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전환된다면 노동자·민중의 삶은 상당 정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소득분배 개선은 자본의 착취도를 저하시킴으로써 이윤율을 떨어뜨리고, 이것은 자본 투자를 저하시킨다. 그것은 다시 생산·고용 감소와 노동소득 감소, 투자 감소를 가져와 자본 축적에 장벽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위기와 민생위기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러므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리셋은 안 하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를 구하지도 못하고 민생을 구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시간을 낭비하며 자본주의 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너머에서 찾아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김승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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