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속보] 톨게이트 노동자들, 청와대로 행진하다 10명 연행”, 속보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지난달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농성을 하던 조합원들을 만났을 때, 그 해맑은 모습이 눈에 선해서였을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관련 기사를 몇 건 더 찾아보면서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보게 됐다. 혹자는 합리적인 문체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업무가 사양화되고 있으니 다른 업종으로 이직을 해야 한다고 답하고, 혹자는 감정적인 말투로 자격과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욕심을 부린다고 의견을 적었다. 그들의 상황을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저렇게 가벼운 말과 논리로 상황을 단언하지 못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스몄다.

투쟁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대법원에서 도로공사 정규직 직원의 지위를 인정받았고(대법원 2017다219072 근로자지위확인 등 사건), 판결이 확정된 사건 이외에 다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동일한 논리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고 있다. 회사가 사정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2015년 이후 입사자들에 대해서도 법원 판결을 통해 불법파견이 인정되는 실정이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기 두 달 전인 2019년 7월1일 자회사를 설립했다. 판결이 선고되자 도로공사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원고들만 도로공사의 정규직 직원 지위를 인정하겠다. 나머지 원고들은 차후 판결을 보고 결정하겠다. 공사는 고속도로 요금수납 업무를 자회사에 모두 이관했으니 공사에 남더라도 그동안 하던 고속도로 요금수납 업무는 할 수 없고,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면 그동안 하던 업무를 계속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기 직전에 요금수납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요금수납원들의 전적 작업을 시작했다. 추가로 제기되는 소송에 따른 직접고용 직원 범위를 최소화하고, 직접고용 판결을 받은 수납원들에게는 해 본 적이 없는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부담을 지우는 결과로 나타났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은 대다수가 중·장년층 여성노동자다. 새로운 업무를 익히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부는 장애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제한적이다.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내놓은 입장은 도로공사 정규직 지위를 고수하면 지금까지 수년간 하던 업무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더욱이 아직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원고들은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으면 당장 생활이 불안정해지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전체 노동자 6천514명 중 5천94명(78%)이 자회사 전환에 동의했고,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745명의 원고 중에서도 220명이 전환에 동의했다(비동의 296명, 정년도과 등 고용단절 203명).

2019년 8월29일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던 날, 조합원들은 "우리가 옳았다!"라며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언론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수년간 이어 온 불법파견이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믿은 순간 지금까지 하던 업무를 계속하고 싶다면 자회사로 소속을 전환하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의 반발은 너무도 당연하다. 현재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소속 조합원들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근로자지위를 인정하라는 입장이다. 도로공사가 하급심에서 계속 패소하고 있고, 자회사 전환에 동의하지 않은 조합원들의 지위가 불안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 확정 이전에 6천500여명의 톨게이트 수납원에 대한 직접고용 의무를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자회사 설립이었다. 모든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을 조직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놓고 잘못된 자리에 나머지 단추를 채우려니 문제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도로공사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요금수납원들에 대해서는 대법원의 판결 결과에 따라 직접고용 의무를 다하겠다고 설명하지만,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소송 과정에서 일부는 정년이 도과돼 회사를 떠나야 하고, 소송 결과에 따라 다시 소속을 옮겨 전혀 새로운 일을 해내야 하는 이 비합리적인 상황을 조합원들이 감내해야 하는 걸까? 도로공사는 법원이라는 심판이 내놓은 해답에 꼼수로 답했다. 이제 국회와 정부가 심판이 돼 꼬인 실타래를 풀어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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