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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안전의 조건하해성 공인노무사(플랜트건설노조 정책국장)
▲ 하해성 공인노무사(플랜트건설노조 정책국장)

고성하이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아르곤가스에 의한 질식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은 10월4일이었다. 발전소로 들어가는 막차가 아침 6시50분인 이곳에서 SK건설의 하청회사 소속인 고인은 저녁도 먹지 못하고 쉬는 시간도 없이 연장근무에 들어갔다. 용접작업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르곤가스는 공기 중 산소를 밀어내 금속 산화를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아르곤은 유용하지만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강제로 환기하지 않으면 낮은 곳에 고여 사람을 질식시키는 죽음의 기체다. 노동자들은 주변에 죽음의 기운이 다가오는 사실을 감지하지도 못한 채 일에 열중하다가 소중한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2016년 11월에도 삼성반도체 공장 건설 과정에서, 또 같은 해 부산에서 아르곤가스에 질식해 사망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모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직경이 큰 파이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렇게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모색되지 않고 있다. 잇따라 발생한 사건의 공통된 원인을 정리해 보면 △안전관리규정 미준수 △솜방망이 처벌 △관리 권한과 책임의 분리 △노동자 참여 배제로 정리된다.

반복되는 아르곤 사고의 1차 원인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중 밀폐공간 작업 기준이 준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도 안전교육과 안전관리자 배치, 사전 산소 농도 측정과 환기, 작업지시서 관리 등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사고 직후 근로감독관이 측정한 사고지점의 산소 농도는 4%에 불과했다. 22%가 정상인 산소 농도는 18% 이하일 때 ‘결핍 상태’로 즉각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런데도 SK건설의 안전관리 담당자는 유족들 앞에서 “망자가 근무하던 곳은 밀폐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은 “헬륨·아르곤·질소·프레온·탄산가스 또는 그 밖의 불활성기체가 들어 있거나 있었던 보일러·탱크 또는 반응탑 등 시설의 내부”를 밀폐공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모르는 척한 것이다.

2차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이다. 사람의 목숨을 경제 운영수단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것보다 사고가 난 후에 벌금과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런 인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아무리 안전규정을 잘 만들어도 이익추구를 위해 생명을 도구화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결국 기업이 스스로 안전관리에 충실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배려가 훨씬 경제적인 제도·환경을 만드는 것이 해법이다. 이를 위해 노동자와 사회적 참사에 분노한 시민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아르곤가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청기업에 해당 건설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훨씬 능가하는 처벌을 가한다면 재벌들은 1개에 30만원 정도하는 산소농도 측정기를 용접노동자 전원에게 지급하는 비용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3차 원인은 관리 권한과 책임의 분리다. 고성하이화력발전소 사망사건의 경우 건설 과정과 속도, 시설물에 대한 관리 권한은 원청인 SK건설이 가지고 있지만 책임은 노동자를 직접 고용했던 성도이엔지가 졌다. 이렇게 권한을 가진 자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사망사고가 반복돼도 현장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런 원인을 다른 말로 ‘위험의 외주화’라고 표현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거론하는 이유는 위험한 일을 정규직이 하라는 말이 아니다. 안전을 관리할 권한을 가진 자가 외주화를 통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마지막 원인은 노동자의 참여를 배제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결정권을 철저히 빼앗기고 있다. 위계화된 현대 기업조직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작업 속도·방식·순서 등 그 어떤 결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명과 안전은 생명체가 가진 고유한 권한이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다.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 스스로 위험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사용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마땅히 부여된 것이다. 기업이 이런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먼저 작업중지권을 명확히 인식시키고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작업중지권이란 위험을 감지한 노동자가 자신과 동료들의 업무를 중단시킬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아울러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인 행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으로 강화된 작업중지권을 후퇴하려는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작업중지권은 생명·안전을 지키기에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또 다른 방식은 노동자들이 수시로 안전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내년 1월16일부터 적용 예정인 김용균법은 현장의 위험성 평가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을 적극 활용해 일부 산업에서만 형식적으로 진행되던 위험성 평가 실효성을 노동자의 적극적 참여 속에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시되는 규정과 허점, 솜방망이 처벌, 위험의 외주화, 생산 과정에 대한 노동자 참여 배제가 죽음의 가스처럼 우리 주위를 덮치고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경제 발전보다 안전을 더 적극적으로 조치하는 정권은 지금까지 없었다. 촛불정권이라는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생명·안전의 조건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실행 의지가 문제다.

하해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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