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두유 노 꼰대?”

얼마 전 영국 공영방송이 우리나라 은어인 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선정했다. BBC 채널 중 하나인 BBC Two는 공식 페이스북에 ‘꼰대(KKONDAE)’를 소개하면서 “자신은 항상 옳고 남은 틀리다고 주장하는 나이 든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알고 있나” 하고 물었다. 전 세계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며 공감했다.

원조국인 우리나라에는 요즘 꼰대를 다양하게 비틀어 표현하고 있다.

“Latte is horse.” ‘라(나) 때는 말이야~’로 번역되는 이 표현은 꼰대의 전형성을 보여 주는 유머다. ‘나 때는 말이야~’는 ‘옛날에는 말이야’와 함께 참전용사형 꼰대들이 말을 꺼낼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최근 한 언론의 인터뷰를 보다가 엄청난 꼰대를 발견했다. 마흔일곱 살 먹은 ‘중년 꼰대’였다.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내 인생을 위해서 한 거다.”

그는 주말도 없이 매일 14시간씩 일하고도 모자라 두 시간을 더 일했다며 “나 때는 말이야~” 하고 말한다. 그가 꼰대인 것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면서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적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를 뺏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권고문에 이 내용을 고스란히 담았다.

기업대표들과 교수들로 이뤄진 위원회는 권고문에 “주 52시간제의 일률적 적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단 한 명뿐인 노동계위원이 “주 52시간 상한제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의 일자리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아니다”고 의견을 냈지만 권고문 맨 하단의 각주로 처리됐다.

권고문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를 전통적 노동자라는 개념과 달리 ‘인재’라고 부른다. 권고문이 소개하는 ‘인재’에 플랫폼 노동으로 대표되는 배달노동자를 대입해 보자.

“인재(배달노동자)는 스스로 생산수단(오토바이)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시급)이 아닌 오직 성과(건당 수수료)만으로 평가받고 자신의 가치를 높인다. 무엇보다 인재(배달노동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배달)을 수행한다.”

아마도 4차산업혁명위는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인재는 그들이 아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같은 최첨단 IT 인재를 말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어떻게 하나. IT노동자(!) 역시 장시간 노동 철폐와 포괄임금제 폐지, 성과배분 투명화를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우고 있는 것을.

미래(4차 산업)를 이야기하면서 19세기에나 가능했던 노동시간을 들이대는 역설은 ‘혁명’적이다. 옛날 자동차 정비소에 붙어 있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를 외친다면 우리는 1970년 한 노동자의 절규를 돌려줄 수밖에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도대체 이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나”로 귀결된다. 혁명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전근대적인 인사를 대통령직속 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혀 놓고 ‘노동존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너무 머쓱한 일 아닌가.

지난해 BBC Two가 페이스북에 소개한 우리의 은어는 ‘소확행’이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장시간 노동을 자유롭게 하자는 권고가 과연 개인의 ‘권리’를 지켜 주려 한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노동시간단축이 ‘소확행’의 조건이라는 것도 그렇다. 굳이 위원회를 만들어 수십 개월을 국민세금 써 가며 토론하지 않아도 말이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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