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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헬기 2번 떴지만 구조자 대신 해경 간부 태웠다"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 "세 번째 희생자 발견된 지 4시간41분 만에 병원 이송"
▲ 강예슬 기자
2014년 4월16일 세 번째로 구조된 단원고 학생 ㄱ군이 발견된 지 4시간41분 뒤에야 병원에 이송된 사실이 드러났다. 헬기로 ㄱ군을 병원에 후송할 기회가 세 차례 있었지만 그중 두 번은 해경 고위직을 태우고 떠났다. 나머지 한 번은 ㄱ군이 있던 3009함(3천톤급 경비함)에 착륙하지 않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회항했다.

31일 오전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희생자 ㄱ군이 발견시점부터 병원 도착시점까지 전반적인 문제가 확인된다"며 "추가 조사로 범죄혐의가 발견되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ㄱ군이 최초 발견된 시간은 오후 5시24분이다. 6분 뒤 ㄱ군은 1010함 소속 단정에서 3009함으로 이동했다. 이후 해경 응급구조사는 오후 5시47분께 목포한국병원에 원격으로 연락을 취했다. 현장에서 해경이 체크한 ㄱ군의 산소포화도는 0%였지만 병원측 원격의료시스템에 나타난 산소포화도는 69%였다. ㄱ군이 사망한 것이 아니라 생존해 있다고 판단한 병원측은 ㄱ군을 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병원 지시에 따라 해경은 ㄱ군을 헬기장으로 옮겼지만 오후 6시35분께 특정할 수 없는 상부의 지시로 다른 함정(P22정)으로 또다시 옮겼다. ㄱ군이 3009함에 있는 동안 헬기 2대가 내려앉았지만 ㄱ군이 아닌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B515)과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B517)을 태우고 떠났다. 이후 헬기 한 대가 3009함에 접근했지만 앞서 온 헬기(B517이 이륙한 상태) 탓에 착륙하지 못했다. 3009함에 있던 해경 관계자가 상공에서 환자를 견인하는 방식을 고민하던 중에 갑작스레 회항했다. 이후에도 ㄱ군은 두 차례 더 함정을 옮겨 탔다. 최종적으로 밤 8시50분께 전남 진도군 서망항에 도착한 ㄱ군은 1시간15분 뒤인 10시5분께 목포한국병원에 도착했고 밤 10시10분 사망판정을 받았다. 특별조사위는 "헬기를 타고 이동했다면 20분 만에 병원으로 이송됐을 텐데 세 차례 단정(함정)을 갈아탔다"고 설명했다.

헬기장에서 단정(P22)으로 옮겼을 당시 ㄱ군이 이미 사망한 상태라고 판단한 것도 문제다. 응급구조사 업무지침에 따라 구조사는 자체적으로 사망판정이 불가능하다. 특별조사위 관계자는 "영상을 보면 ㄱ군은 응급구조사가 사망판정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ㄱ군은 7시15분께 이미 환자에서 시신으로 명명됐다. 박병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국장은 "P22정으로 (ㄱ군을) 태우라고 한 순간 시신으로 간주했다고 보고 있다"며 "강제적으로 수사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별조사위는 두 번째 희생자가 발견된 시점(오전 11시40분)과 세 번째 희생자 발견된 시점(오후 5시24분) 사이 있었던 5시간40분의 공백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사고 당일 발견 직후 아이를 즉각 헬기에 태워 이송했다면 우리 아이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며 "검찰은 특별조사위가 발표한 사실을 철저히 수사해 기소하고 관련자 모두를 살인죄로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강예슬  yeah@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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