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부산고등법원(창원) 2019. 9. 26. 선고 2016나724 판결


1. 사건의 개요

한국공작기계는 연간 정기상여금 550%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채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해 왔다. 이에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법정수당을 재산정해 미지급 차액을 지급하라는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공작기계의 정기상여금은 중도 입사·퇴사자에게 일할지급하고, 소정근로의 제공 외에 다른 지급요건이 존재하지 않아 고정성 요건은 주요쟁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구기간(2012년 2월~2014년 3월) 대응 시점에 상당한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상황이 별로 좋지 못해, 피고도 주로 신의칙(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을 이유로 기각을 주장했다.

2015년에 선고된 1심은 다소 등락은 있으나 피고 회사의 영업이익이 지속돼 왔고, 매출도 꾸준한 점을 근거로 피고의 신의칙 항변을 기각하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그런데 1심 판결 선고 직후 피고 회사는 경영위기로 법정관리 절차가 시작됐다. 이에 원고·피고 쌍방은 항소심에서, 당시 신의칙 쟁점에 관한 판단 법리를 제시하기 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시영운수 사건 선고 이후로 추정(추후지정)을 요청했다. 이후 2019년 2월14일 시영운수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자 이 사건 항소심 절차가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한국공작기계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법정관리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음은 물론 회생계획 이행이 순조롭게 되지 않아 파산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시영운수 판결의 요지는 통상임금 사건에서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근로자들의 법정수당 청구를 배척하는 것은 자칫 기업 경영에 따른 위험을 사실상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해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비록 신중하고 엄격한 적용 원칙을 선언했지만 신의칙 법리 자체를 폐기한 것은 아니었기에 여전히 그 적용 여지는 남아 있었다. 이에 중대한 경영위기로 장기간 법정관리 상태가 이어진 경우라면 예외적으로 신의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인지 문제가 됐다.

2. 원고들의 주장

원고들은 시영운수 판결과 그 전후로 선고된 다스 사건(대법원 2018. 12. 27. 선고 2016다10131 판결), 한진중공업 사건[대법원 2019. 4. 23. 선고 2016다37167·37174(병합) 판결]을 근거로, 다음의 법리를 주장했다. 신의칙 판단은 원칙적으로 청구기간에 대응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다만 청구기간에 대응하는 시점에 경영이 어려워 신의칙 항변 인용 여지가 있더라도, 장래에 사정이 나아졌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신의칙 항변은 배척돼야 한다. 설령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추가 법정수당 지급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이 직접적 요인이 된 것이 아니라면 신의칙 항변은 인용될 수 없다(즉 법정수당 지급이 독립요소로서 경영위기를 초래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신의칙 적용 불가).

실제 다스 사건에서 대법원은 신의칙 판단을 청구기간에 대응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신의칙 항변을 배척했고, 시영운수 사건에서는 버스준공영제 적용을 받고 있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래에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란 점을 신의칙 항변 배척 근거로 삼았다. 특히 한진중공업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가 지급해야 할 임금총액도 상당히 증가해 당초 예측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피고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볼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해 “직접적으로”를 새롭게 추가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이 직접적으로 경영위기를 초래하는 것이어야 신의칙 항변이 인용될 수 있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3. 대상판결의 내용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이 원고들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하는 취지로 피고의 신의칙 항변을 기각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한국공작기계가 앞서 본 바와 같은 어려운 경영상태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에게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한 법정수당을 추가 지급함으로써 현재의 경영상태에 더해 경영상의 중대한 위험이 가중된다거나 ‘추가로’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청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는 없다. ① 이 사건 소송을 제외하고는 원고들을 제외한 나머지 한국공작기계 소속 근로자들이 법정수당 청구권과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 동안의 법정수당 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② 이 사건에서 인정된 추가 법정수당은 매출액의 1.2%, 자산의 0.39%, 부채의 0.27%에 불과하여 한국공작기계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③ 원고들의 이 사건 소 제기와 1심 판결 선고 무렵인 2015년도의 한국공작기계 매출액은 420억4천60만2천879원이고, 영업이익은 14억9천952만2천523원이어서 원고들에게 이 사건에서 인정된 추가 법정수당을 충분히 지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④ 한국공작기계가 회생절차에 이르게 된 원인은 해외매출채권 회수 불능 및 회수 지연, 매출액 감소에 따른 누적 영업손실 및 금융비용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일 뿐 소속 근로자들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것이라거나 그 외 근로자들의 책임으로 돌릴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 ⑤ 한국공작기계의 회생계획안에 의하더라도 법정수당 채권은 공익채권으로서 영업수익금과 기타 재원으로 법원의 허가를 얻어 수시로 변제하기로 돼 있다. (…) ⑧ 원고들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되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법정수당의 근거가 되는 과거의 연장·야간·휴일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한국공작기계가 향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들이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없고, 원고들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되는 정도가 중하고 명확하다고 보기 어렵다.”

재판부는 법정수당의 지급이 독립요소로서 추가로 경영위기를 초래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고들의 핵심 법리주장을 명시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실제 청구가 가능하지 않은 법정수당은 신의칙 판단에서 제외했고 청구하는 법정수당 규모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이익이 아닌 매출액 등 회사의 경영규모와 비교해 판단했다. 또 신의칙 판단 시점을 청구기간에 대응해 판단을 내렸다. 현재 경영위기의 주된 원인을 찾아 그것이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것인지 여부를 살폈고, 법정수당 채권이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으로 회생·파산절차와 무관하게 변제돼야 하는 채권임을 고려했다. 청구원인이 근로기준법상 두터운 보호를 받는 임금채권인 점을 고려해 신의칙 위배 여부를 판단했다.

4. 의의

애초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상 법정수당 청구를 신의칙으로, 그것도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제한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의 법리는 대법관 3인이 소수의견으로 밝힌 것과 같이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본래 임금채권은 다른 채권이나 심지어 조세채권보다 우선 변제돼야 하고, 심지어 직전 3개월분은 담보된 채권보다 우선 변제되며 미지급시 형사처벌까지 되는 등 법률에 의해 강하게 보호받는 채권이다. 그럼에도 기존 대법원의 신의칙 법리에 따르면 경영이 어려운 회사는 근로자들의 임금채권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대신 그 돈을 일반 채권자들에게는 지급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결론이 정의와 형평의 원칙에 부응한다고는 도저히 상정할 수 없다. 올해 선고된 대법원 시영운수 판결은 이와 같은 비판을 일정 정도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상판결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법정수당의 지급이 독립요소로서 추가적 경영위기를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설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밖에도 대상판결은 시영운수 등 최근 대법원 판결 법리의 연장선에서 △설령 회생절차 진행 중이라 할지라도 회생절차에 이르게 된 원인이 근로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것인지 △법정수당 청구가 경영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함과 함께 △통상임금 청구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상 권리행사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신의칙 항변을 배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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