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 약속
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한다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이 고운 말씀에
님의 정치가 담겼으면
언약이 멈춘 곳
민심도 막히고
만남도 막혔음이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니리오
님의 정치가 어찌 꽃처럼
피어날 수 있겠는가

여기
빈 청사
동지들은 맨바닥에
엿새째
노곤한 하루를 잠재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맑아지는
신심
그대의 무딘
칼날로 어찌
빛나는 투혼을 베겠는가
몸서리치며 성찰하라
그대들의 정치는
얼마나 허접한가

여기는
밤의 빈 청사
우리가 접수했다
본디 여기는 민중의 집강소
민중의 집이다
우리가 노동을 지킨다
여기는 맨바닥
끝내 세상을 바꾼다

 

▲ 송재혁 전교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선전국장

이 시는 서울 중구 삼일대로에 위치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4층 구석에서 빚어졌다. 이곳에서 농성을 한 지 6일째를 맞는 10월26일 새벽 2시 무렵, 전교조 전 위원장 조창익 선생님이 쓴 <독백>의 일부다.

깔개 한 장 놓고 선잠을 자던 중 희미한 불빛 뒤에서 뭔가 골몰하며 글을 쓰는 모습을 발견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나 숨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생생한 투쟁 현장을 때로는 한시에 담고 때로는 국문시에 담아 남기는 조창익 선생님의 모습은, 촛불혁명 시기에 대변인으로 옆에서 함께했던 입장에서 생경하지 않다.

법외노조 통보가 있은 지 6년이 지나도 전교조가 법외노조고 해직교사가 돌아갈 학교가 없는데, 정부는 노동자 권리 신장을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안을 제출해 놓고서도 한편으로는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어찌 마음 편히 잠을 이룰 수 있으랴. 더군다나 14년 동안 합법노조였던 전교조에 팩스 한 장으로 노동조합 아님 통보를 했던 고용노동부에 속한 청사 안에 드러누우니, 극도의 피곤함조차 치솟는 분노를 덮지 못한다.

28일로 전교조 해고자 18명의 서울지방노동청 청사 안 농성이 8일째를 맞았다. 노동부 장관 면담을 요구하는 첫 공문을 보낸 지 4개월이 넘었지만 오늘도 농성 현장으로 돌아올 것은 면담 수용이 아니라 일곱 번째 퇴거요청서가 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장관을 만날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해직교사들이 밤낮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과 해고자 원직복직만이 아니다.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을 빼고는 모조리 개악투성이인 정부의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깨뜨리고, ILO 기본협약 정신에 부합하도록 노조할 권리와 노동 3권을 이 땅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박근혜 정권조차 하지 않았던 노동법 개악을 강행하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촛불정신으로 회귀하자 주문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의 불쏘시개! 함께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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