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호현 변호사(법무법인 원)

어제는 맛집으로 유명한 ‘이태리상회’란 곳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일러서인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손님보다 더 많은 수의 라이더들이 헬멧도 벗지 않은 채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점심은 ‘요기요’에서 시켰다. 주문 1분도 되지 않아 라이더 이름과 예상 도착 시간이 뜬다. 음식 픽업 후 14분 만에 배달 장소에 도착했다는 영수증을 받았다. 원래 우리나라는 배달음식 시장이 컸지만 그 시장이 연간 20조원 규모로까지 성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뭐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사실 체감이 잘 되지는 않는다.

텔레그램의 노동안전보건소식 채널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의 산업재해사고 알림이 울린다. 아파트 13층에서 케이블TV 수리기사 추락사, 전신주 통신케이블 작업자 추락사, 도색작업자 추락사, 시멘트공장 근로자 사고사…. 끊임이 없다. 그런데 우리 일상에 이렇게 파고든 배달노동자 이른바 라이더들의 산재 소식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사고가 덜 나는 걸까? 아니었다. 오토바이 배달 사망사고는 ‘교통사고’라는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조사에서 배제되고 있고, 고용노동부의 산재 관리 항목에 ‘배달업’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배달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법령·산재보상법령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다수 배달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로서 독립적으로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달노동자들이 이렇게 노동시간 내내 도로와 인도를 넘나들며 죽음의 레이스를 펼쳐도 월평균 소득은 163만9천원에 불과하다.

주문대행 플랫폼, 배달대행 플랫폼, 배달음식 생산자, 배달음식 소비자 그 누구도 온전히 책임을 지지 않고 지려야 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바뀐 것이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해 주문하면 음식이 집까지 배달되는 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그런데 음식점에서 배달원을 고용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배달원을 상시적으로 고용하고 관리할 만큼 매출이 일정하거나 높지 않다. 배달원을 채용해 데리고 있는 음식판업자들은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 배달대행 플랫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는 상시고용을 늘려 몸집을 키우고 소속 라이더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다가 언제 시장에서 밀려날지 모른다.

현상이 달라진 것이 없음에도 죽어 나는 노동자들이 있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윤이 있는 곳에 책임이 있어야 하고, 그 이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임무다. 지난해 4월30일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모든 노동자를 우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employee)로 추정하고, 해당 노동자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임을 주장하는 자(회사)에게 그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했다.

구체적으로 위 판결은 노동자를 사용해 이익을 얻는 회사가 해당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로서 노동법 보호범위 바깥에 있음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당 노동자가 계약상으로나 실제적으로 업무 수행에 관해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사용지시를 받지 않고 △당해 노동자의 노무제공이 그를 사용하는 기업의 통상적 사업 수행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며 △독립 자영업으로 형성된 직종·직업·사업에서 그 노무제공자가 일해 온 방식과 동일하게 고객(기업)을 위해 일했다는 점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위 판결의 취지(abc Test 및 입증책임 전환)는 그대로 법령 개정에 반영돼 지난달 10일 캘리포니아주 상원 전체회의에서, 같은달 19일 주지사의 승인을 거쳐 입법됐다.

현재 한국 현실에서 캘리포니아 사례와 같은 대법원 판결이나 정부의 정책, 국회의 입법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의 3부(입법·사법·행정)는 개인사업자로 위장된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결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2018년 들어서야 학습지교사·방송연기자·자동차 딜러(카마스터)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이 특정 사업자에 대해 전속성이나 소득 의존성이 낮더라도, 또는 독립사업자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더라도 노동 3권을 보호할 필요성을 들어 적어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근로자에는 해당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보수적인 사법부 태도가 이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속하게 움직여야 할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령·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의 개정에 미온적이다.

산재가 발생했을 때 해당 노동자를 사용해 이익을 본 사용자가 정부·노동자와 함께 부담한 보험료로 재해노동자의 요양을 책임져야 함에도 이를 국민 부담인 건강보험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개인사업자와의 계약이라는 명목으로 노동법 적용을 회피해 다른 경쟁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물론 경쟁당국을 포함한 모든 행정부·입법부·사법부는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아래와 같은 노동법 규정의 근본취지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 노동법 규정의 근본적 취지는 우선적으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것이며,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노동조건의 최저한을 보장함으로써 그들에게 존엄과 자존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 규정은 노동법을 준수하는 기업들이 노동법 적용을 회피하는 경쟁기업과의 불공정한 경쟁에 시달리는 것을 방지하는 취지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이 규정은 보다 일반적인 공공적 목적을 가지는데, 이는 노동법 규정이 준수되지 않았을 때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생기는 부정적 효과를 결국 사회가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캘리포니아 대법원, 2018년 4월30일 판결 중)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