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여영국 정의당 의원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6월11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을 무력화하는 필수유지업무제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매일노동뉴스 자료사진>

엘지유플러스 통신망 관리업무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으로 지난해 9월 원청에 직접고용됐다. 정규직이 됐다고 노동조건이 자동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 정규직과 전환된 이들의 임금격차가 두 배가량이나 됐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한마음지부는 임금 정액 인상을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하고 올해 임금·단체교섭을 했다. 기존 정규직노조인 민주유플러스노조도 지부 요구에 동의하며 힘을 실었다. 5월부터 시작한 교섭은 난항을 거듭했다. 교섭 진행 중 지부는 쟁의행위를 준비했다. 그런데 필수유지업무 제도라는 난관이 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쟁의행위 조정중지 결정 받아도
필수유지업무비율 못 정해 파업 제약


27일 노동계에 따르면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필수유지업무제로 인해 이중·삼중으로 파업권을 제약받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필수공익사업에 속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 조정절차를 거친 뒤에도 곧바로 파업할 수 없다. 파업시 유지해야 할 필수유지업무비율만큼의 인력을 남겨 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노사는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자율적으로 체결하거나, 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면 노동위 조정을 거쳐 비율을 결정한다.

한마음지부는 단체교섭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자 8월2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필수유지업무 수준 등 결정' 신청을 했다. 서울지방노동위에서 필수유지업무비율 결정이 논의되는 도중인 지난달 17일 엘지유플러스 노사 임단협이 결렬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달 2일 조정중지 결정을 했다. 서울지노위의 필수유지업무비율 결정은 16일 나왔다. 신청을 받고 결정하기까지 2달가량이 걸렸다. 왕의조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필수유지업무 결정 신청을 하자 서울지노위측이 비율을 결정하는 데 최소 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고 노조·지부는 쟁의권을 무력화하는 조치라며 반발했다"며 "토론회·기자회견·정책협약은 물론 서울지노위 관계자들 면담을 통해 설득과 압박 작업을 한 끝에 신청 2달여 만에 결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와 교섭하기도 힘들었지만 파업을 하기 위해 필수유지업무비율을 정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며 "파업하기 너무 힘들다"고 허탈해했다.

한마음지부 사례는 필수유지업무제를 맞닥뜨린 노조들의 최근 경험 중 그나마 나은 편에 든다. KAC공항서비스㈜의 3개 노조는 공동교섭단을 꾸려 올해 임금교섭을 했다. 교섭이 결렬돼 중앙노동위에 쟁의조정을 신청했고, 7월 중순 조정중지 결정이 났다. 노조들은 파업하기 위해 7월23일 서울지노위에 필수유지업무비율을 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신청 3개월이 지난 이날까지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중앙노동위 필수유지업무 유지·운영수준 등의 결정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필수유지업무 결정 신청사건은 가급적 신속히 처리하도록 한다"고 돼 있다. '신속히'와 관련한 기준은 없다. 몇 달, 몇 년을 끌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서울지노위측은 현장실사를 하겠다면서 계속 결정을 늦추고 있다"며 "단체교섭도 중단되고, 파업도 하지 못하면서 노조활동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말했다.

노동계·전문가 "일반 조정절차 준용" 제안

공공운수노조 서해선지부는 노동위의 빠른 결정을 위해 필수유지업무비율을 대폭 양보했다. 서해선지부는 사측과 임금교섭을 진행하던 8월27일 경기지노위에 필수유지업무비율 결정을 신청했다. 지난달 3일 교섭이 결렬되고, 경기지노위 조정회의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같은달 25일 조정중지 결정이 났다. 서해선지부는 비율이 결정되지 않아 이달 15일로 예고한 파업을 당일 철회했다. 경기지노위는 지난 21일에야 비율을 결정했다. 서해선지부 관계자는 "지부는 비율 0%를 주장했고 사측은 평균 60% 이상을 요구했다"며 "파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기지노위 결정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경기지노위 결정에 따른 서해선 필수유지업무비율은 50%(종합관제)에서 100%(운전취급) 사이로 평균 68.5% 수준이다.

개선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비율을 정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면서 노조의 쟁의권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필수유지업무제는 사실 제도 폐기 말고는 답이 없다"며 "과도기적으로 각 노동위에 필수유지업무 결정을 전담하는 부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두섭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업종별 전문성이 없는 노동위 위원들이 비율을 결정하고, 70~100%까지 높은 유지율을 제시하고 있다"며 "노사 자율로 범위와 유지율을 정하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동위가 관여하는 경우에도 일반 조정절차와 같은 구조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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