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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권한을 점령하는 것이 개혁김영수 상지대 초빙교수(농부)
▲ 김영수 상지대 초빙교수(농부)

문재인 정권은 2016년 촛불항쟁 염원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출범했다. 최근 정국을 달군 ‘조국 대전’이 ‘검찰개혁’의 전선까지 중첩돼 있었던 만큼 사회대개혁은 정책코드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을 개혁의 울타리에 가두고 있다. 맞다. 개혁의 시대인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에게 사회대개혁 코드라도 심어져 있을까 의심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개혁. 참으로 듣고 쓰기 좋은 말 중 하나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것들을 바꿔 보자는데, 사람들이 보다 공평하게 살 수 있다는데, 이를 싫다고 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사회의 부정의와 불공정으로 특권을 누리거나 큰 혜택을 보는 데 여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조국 대전에서 대통령조차 나서 검찰개혁 깃발을 흔드는 것을 보니, 검찰이야말로 야만시대의 흔적이자 적폐이자 부정의와 불공정의 심장부가 됐다.

정치권력의 야만성은 1987년 이전 독재 권력이 야만스럽게 권한을 행사해서 사람이 누리고 살아야 할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했던 시대의 산물이다. 권리는 그저 종이에 적힌 글자에 불과했다. 권력의 칼이 춤을 췄던 시대의 아픔이었다.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 중독됐다. 그리고 권리는 정치권력의 야만성을 걷어 내는 역사의 주인이 됐다. 권력과 권리가 서로 마주하면서 갈등하고 투쟁했던 접점의 시대가 그것이었다. 접점의 점들은 권력을 야만의 동굴에서 나오게 했다. 권력은 사회 변화를 이끄는 권력의 대항마인 권리와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리는 동행에 머물지 않고 권력의 시공간에 조금씩 발을 내딛고 손을 뻗기 시작했다. 민주화의 이행과 공고화를 일구는 참여시대의 문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담론은 숙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였다. 주민투표로 원자핵 방폐장 장소를 결정했다. 권력 잔혹사를 밝히기 위한 각종 진상규명위원회와 권력 전체 예산의 한 점만을 주민참여 방식으로 결정하는 주민참여예산제 및 각종 정책제안제도가 도입됐다. 사회의 한 권력인 언론도 대의제를 보완하는 숙의민주주의나 참여민주주의의 실험으로 민주주의가 이미 완성된 것처럼 부추겼다. 그러나 속 빈 강정과 같은 민주주의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주의 실험실에 참여한 사람들은 권한이 없었다. 권력은 실험실을 그동안 해 왔던 정책 공청회를 확대시킨 것으로 간주하면서 실험실 참여자들의 의견을 참조하면 그만이었다. 그럴싸한 포장지로 장막을 친 혹세무민과 다름없었다.

이러한 권력의 다중인격성이 소위 개혁의 시대에 만발하고 있다. 권력은 은밀하게 자신의 권한을 철갑 보호막으로 방어하면서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를 무너뜨리고 왜곡하는 데에는 물 찬 제비와 같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제로로 하겠다는 '궁중 희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의 대국민 사기,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이나 법외노조로 전락한 전교조 권리회복 지체 등. 국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결정해도 되는 것들은 방치하면서 권력 밥그릇을 움켜쥐려는 아웅다웅이 마치 개혁인 양 호도되고 있어서 그런지, 국민의 눈과 귀는 여과되고 정제된 권력 놀이에 머물러 있다.

인간다운 삶의 질이란 권리로 채우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참민주주의는 이런 삶의 원리를 헌법 가치로 삼는다. 권력은 그 가치를 위해 봉사하면 그만이다. 지배하고 통치하는 권력 패러다임을 지원하고 헌신하는 권력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와 개혁에 대한 신뢰를 쉽게 내주지 않을 사람들과 사회대개혁 희망을 내던진 채 허무와 패배의 늪으로 빠져든 사람들을 건져 낼 희망의 탈출구다.

이러한 개혁 패러다임을 혁명적 개혁의 이상주의로 덧씌우지 않길 바란다. 권리가 권력을 점령해서 인민의 권리보호를 또 다른 권력시스템으로 구축한 사례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민보호기구(헌법 182~183조)나 공동체의 권리보호 및 권리 촉진위원회(헌법 185~186조), 인권위원회(헌법 184조) 등은 헌법기관이다. 베네수엘라의 공화국윤리위원회(헌법 273조)와 인민권리수호기관(헌법 281조)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 헌법이지만 개혁시대에 권력과 권리가 어떤 ‘관계 맺기’를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권력이 독점했던 권한을 국민과 시민사회로 돌려준 사례들이다. 개혁은 행정·입법·사법 권력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공공기관 권력까지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참개혁의 상과 내용을 벤치마킹할 거리들이다.

권력 내에서 이뤄지는 구조개편을 개혁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개혁이란 권력의 시스템과 권한을 권리 주체인 국민과 시민사회가 점령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의 출발은 권리가 권력의 권한을 점령하면서 시작된다. 국민과 시민사회가 권력의 권한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의 일상화를 권력에 강제할 수 있는 권리다. 책임은 은밀하게 숨고 권한만 춤을 추는 세상은 야만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개혁이 야만의 권력 패러다임을 사람다운 권리 패러다임으로 대체하는 소명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새겨 본다.

김영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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