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바지 사장이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바지 대통령이라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오늘 이기권 장관 퇴진을 외치러 왔는데, 정권 퇴진을 외쳐야 할 때다.”

2016년 10월26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한 발언이다. 한국노총은 애초 양대 지침과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이는 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세종시로 내려갔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듯이 최순실 등이 국정을 농단하고, 대기업과 결탁해 노동정책마저 좌지우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규탄대회는 장관 퇴진이 아니라 대통령 퇴진의 장으로 바뀌었다.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권 퇴진"을 공식화했다. 결의대회 다음주인 11월3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에서는 “노동자·국민의 요구다! 박근혜 퇴진!”을 걸고 “봉건시대에서도 있을 수 없던 일들이 현실로 밝혀지고 있다. 재벌대기업은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에 막대한 금액의 돈을 기부하고, 박근혜표 노동개악을 얻었다”며 시국선언을 했다. 서울 광화문과 전국 광장에서 1천700여만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매주 촛불을 들었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돌아보면 눈 깜짝할 순간이지만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촛불정신을 내세운,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권의 출범은 많은 이들을 흥분케 했다. 정말이지 2017년 봄만 하더라도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 광장에서 외친 모든 것들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음을 잘 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오늘, 촛불을 얘기하는 소리는 크지 않다. 그저 하루하루를 이어 나가는 모습이랄까. 뉴스는 온통 갈라 치고 편을 가른다. 촛불 이전이라고나 할까.

원인이야 많겠지만, 이즈음 정부 의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주말 “청와대는 내년 1월로 예정된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시행과 관련해 국회 입법을 통한 보완이 어려울 경우 계도기간을 두는 방법 등의 보완대책 마련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예산안 통과를 위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에 근로시간단축이 확대 시행됨에 따라 탄력근로제 등 보완입법이 시급합니다. 그래야 기업이 예측가능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고 정리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목이다. 과연 누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써 준 것인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해 이미 시행 중인 법률이다. 300명 이상 사업장은 시행된 지 1년이 넘었다. 당시에도 계도기간을 뒀다.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우선 시행된 결과를 바탕으로 발생한 문제점을 바로잡고 300명 미만 사업장 시행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계도기간’ 타령이라니. 처벌을 유예하겠다는 정도인 것으로 보이는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법 위반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행정부가 무슨 수로 그 집행을 늦추겠다는 것인가. 참으로 위험한 위헌적 발상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주 52시간 상한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사회적 합의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기로 했지만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을 보장하는 전제에서 시행해야 한다. 오히려 과거 노동부가 행정해석으로 허용했던, 수회 연속으로 반복해 탄력근로를 시행하거나 수주 연속으로 주 52시간을 웃도는 방식은 행정입법에서라도 절대 금지해야 한다.

기업이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보완대책’은 계도기간을 아무리 늘려도 불가능하다.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도 답이 아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할 격차는 커져만 갈 것이다. 노동현장에 공고하게 자리한 중층적인 노동 착취구조를 헐어 내는 게 우선이다. 최저임금 인상 중심의 노동정책도 그중 하나였다. 모든 노동자가 주 40시간만 일하고도 헌법이 보장한 나름의 충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굳이 처벌유예가 필요 없지 않겠나.

지난 3년간 정책의 선후를 잘못 정해 일을 그르친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최근 심심찮게 나오는 “대통령이 대기업에 포획된 것 같다”는 평가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실패의 경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3년 전의 다짐을 분명히 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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