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 대전지법 천안지원 2019. 9. 4. 선고 2019고합23, 2019고합45(병합)

1. 사실관계 및 사건의 경과

피고인 류○○(유성기업 대표이사), 피고인 이○○(유성기업 아산공장장), 피고인 최○○(유성기업 영동공장장)은 금속노조 아산지회 및 영동지회(이하 ‘유성기업지회’라 한다)의 조합원 규모 축소 등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방안에 대해 노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이를 실행하기로 공모했다. 2011년 4월28일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으로부터 ‘금속노조 영향력 축소’ ‘온건·합리적인 제2 노조 출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컨설팅 제안서’를 받았다. 그 후 피고인들은 2011년 5월27일께 유성기업 사무실에서 ‘정식’ 노무관리 관련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날 인사교육특별자문료 명목으로 유성기업 계좌에서 창조컨설팅 자회사인 주식회사 휴먼밸류컨설팅 명의 계좌로 5천500만원을 송금하는 등 그 무렵부터 2012년 12월10일까지 24회에 걸쳐 합계 13억1천56만2천550원을 송금했다. 피고인들은 2012년 12월까지 지속적으로 월 1~2회 이상 ‘유성기업의 제2 노조 설립을 지원하고, 아산지회 및 영동지회의 노조원을 감소시키는 방안’ 등을 자문받아 이를 실행하는 방법으로 아산지회·영동지회 운영에 지배·개입했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해 위와 같이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휴먼밸류컨설팅에 13억1천56만2천550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하고 유성기업에 같은 액수에 해당하는 손해를 가했다.

피고인 류○○, 피고인 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위반 건 등으로 수사를 받게 되자, 변호사를 선임한 후 유성기업 자금으로 변호사 선임료를 지급하기로 마음먹고, 2014년 1월27일 변호사 선임료 명목으로 1천100만원을 유성기업 명의 계좌에서 법무법인 성의 명의 계좌로 송금한 것을 비롯해 업무상 임무에 위배해 피고인들의 개인 형사사건에 대한 변호사 선임료 명목으로 5회에 걸쳐 합계 1억5천400만원을 지급해 이를 횡령했다.

2018년 10월 유성기업지회는 위 범죄사실에 관해 대전지검 천안지청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2019년 2월8일 검사 정재신은 위 범죄사실에 대해 피고인들을 기소했다. 2019년 9월4일 대전지법 천안지원(부장판사 원용일)은 범죄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피고인 류○○에게 징역 1년10월 및 벌금 500만원을, 피고인 이○○에게 징역 1년4월에 집행유예 3년 및 벌금 300만원과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피고인 최○○에게 징역 1년2월에 집행유예 3년 및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각 선고했다.

2. 판결의 쟁점

가. 업무상 배임의 점에 관한 판단

피고인들은 “창조컨설팅과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것은 불법노동쟁의로 인해 생긴 급박한 경영위기에서 인사·노무 분야 전반에 관한 전문적인 자문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컨설팅 계약을 체결할 당시 그 목적이나 자문 내용에는 제2 노조 설립 등의 불법적인 부분이 포함돼 있지 않았는바 컨설팅 계약을 체결해 그 자문료를 지급한 것이 임무위배행위라고 할 수 없고, 피고인들이 이익을 취득하고 유성기업에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이나 의도가 없었으므로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업무상 배임죄 성립에 관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2. 7. 22. 선고 2002도1696 판결, 대법원 2007. 11. 15. 선고 2007도6075 판결, 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1도15052 판결 등)의 법리에 따라 “노조의 조직·운영에 대한 지배·개입이라는 불법적인 목적을 위해 회사 자금으로 컨설팅 비용을 지급하고 컨설팅 회사로부터 이에 관한 자문 용역을 받은 것은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서, 피고인들에게 회사를 위한다는 나름의 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불법한 행위를 위해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는 회사와의 신임관계를 저버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피고인들의 배임의 고의 역시 인정된다”고 판시하면서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나. 업무상 횡령의 점에 관한 판단

피고인들은 “노조법 위반 등 사건들의 경우 유성기업이 해당 소송의 소송당사자로서 변호인 선임계약 체결주체이므로 각 해당 소송의 피고인들에 대한 변호사 비용을 부담한 것이 업무상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법인의 대표자 개인이 당사자인 소송사건에서 변호사 비용을 법인의 비용으로 지출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관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7도9679 판결 등)의 법리에 따라 “피고인 류○○ 등이 유성기업의 임직원으로서 적법하게 직무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노조법을 위반하는 불법행위를 함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행위자로서 재판을 받게 된 것이고, 유성기업은 행위자인 피고인 류○○ 등이 노조법을 위반한 경우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그 법인·단체에 대해서도 벌금을 과하도록 규정한 노조법 94조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된 것일 뿐이다. 개인 과오로 발생한 형사사건 변호사 비용은 회사운영에 필요한 비용에 해당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이유로 인해 기소돼 재판을 받는 경우 실질적인 소송당사자는 범법행위를 한 피고인 류○○ 등이다”는 이유로 피고인들의 위 주장을 배척했다.

또한 피고인들은 “연차수당 미지급 등 근로기준법 위반사건의 경우 유성기업이 형사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근로계약의 당사자로서 그 결과에 대해서 실질적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유성기업이 변호사 비용을 부담했다고 해 피고인들에 대한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위 대법원 판례의 법리에 따라 상여금 미지급 및 연장근로 한도 초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의 경우 “주요 근로기준법 위반행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근거 등을 보면 부당노동행위의 수단이나 불법행위의 일환으로 행해진 것임을 인정할 수 있는바 유성기업에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스스로를 위해 소송을 수행하거나 고소에 대응해야 할 특별한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연월차휴가 미사용수당 미지급으로 인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의 경우 “피고인 류○○ 등이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을 지배·개입하는 불법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그 전략으로 유성기업지회와 유성기업㈜노조를 차별하는 수단으로서 일부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출근율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해 연차유급휴가수당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사건임을 인정할 수 있는바 그 본질은 개인의 고의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형사사건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해 피고인들의 주장을 배척했다.

3. 판결의 의의

대상판결은 노조의 조직·운영에 대한 지배·개입이라는 불법적인 목적을 위해 회사 자금으로 컨설팅 비용을 지급하고 컨설팅 회사로부터 이에 관한 자문 용역을 받은 것은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로서, 위와 같은 불법한 행위를 위해 대가를 지급하는 행위는 회사와의 신임관계를 저버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보면서 이에 관여한 법인의 대표이사 등에게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최초 판결이다. 또한 법원이 법인 대표이사 등이 배임행위를 통해 수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혔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하던 나쁜 관행을 깨고 피고인들의 범행의 중대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편 대상판결이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른 새로운 법리를 밝힌 것이 아니라는 점, 노동쟁의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법인의 대표이사 등이 노조의 조직·운영에 지배·개입하기 위해 수억원대 회삿돈을 사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상판결과 같은 판례가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검찰이 업무상 배임의 전제가 되는 법령 위반행위(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극히 일부 사례만 기소했고, 법원은 이마저도 솜방망이 판결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자인 노동조합(또는 노동자)이 사용자의 배임행위를 적극적으로 고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본 건의 경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선행판결{대전지법 천안지원 2013고단1867·2015고단507(병합)·2015고단768(병합)·2016고단2490(병합) 판결, 대전지법 2017노663 판결, 대법원 2017도13781 판결}이 주요 논거로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선행판결의 경우 공소제기 자체가 순탄치 않았다. 선행판결의 1심 사건번호에서 알 수 있듯이 검찰은 2013년 12월30일 유성기업지회가 고소한 중요 범죄사실을 불기소 처분하고 일부 경미한 건만을 기소했고, 노동자들이 이에 굴복하지 않고 재정신청을 비롯해 불기소처분의 부당성을 호소하는 투쟁을 전개한 끝에 2014년 12월30일 대전고등법원이 불기소 처분됐던 중요 범죄사실 대부분에 대해 재정신청 인용결정을 하자 비로소 검찰이 추가 기소를 하게 된 것이다. 만약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이 없었더라면, 고발장 및 수사기록에 첨부한 핵심적인 증거자료는 지금도 검찰청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채 썩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성기업지회 노동자들은 핵심적인 증거자료를 쥐가 갉아먹도록 놔두지 않았고, 결국 유성기업 사용자들의 추악한 업무상 배임 및 횡령범죄 사실이 판결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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