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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적’ 노동제, 권력의 직무유기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요즘 주 52시간제에 관심이 높다. 물론 사퇴 이후에도 여전히 조국 정국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나라에선 조국 관련 뉴스가 훨씬 높은 관심을 차지한다. 그러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소심하게 덧붙이자니 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조국 사퇴 이후 정부는 민생 행보에 박차를 가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보완대책 마련을 지시하더니, 청와대와 각 부처에서는 잇따라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것을 보면 정부 대책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입법이고, 둘째는 주 52시간제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두는 방안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언제 통과시킬 것인지, 조국 정국이 마무리되고 국회가 입법부로서 정상 작동된다고 해도 자유한국당이 1년으로 확대하는 개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국회 입법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에 2020년 1월1일부터 시행될 주 52시간제에 관한 대책으로 6개월 이상 계도기간을 두고 사용자 처벌을 유예해 주겠다는 게 정부의 주된 대책이 되고 있다. 21일 나온 문재인 정부 관계자 말을 들어 보자. 국회 종합국정감사에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되면 상당수 중소기업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등 정부부처와 함께 11월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보완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도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해 계도기간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촛불대선에서 “연장근로(휴일을 포함)를 포함한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이행”하고, “연장근로 제한법제가 적용되지 않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법 59조) 및 적용제외 산업(63조) 축소와 1주 60시간 상한제 도입 추진”을 공약했다(‘나라를 나라답게’ 더불어민주당 19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 84면).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확대를 입법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계도기간을 둬서 사용자 처벌을 유예하겠다는 내용도 없었다. 이렇게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 이행하고 이런 근로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업종 및 산업도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던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 전면이행’에서부터 공약의 ‘전면이행’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공약에서는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 전면이행”하겠다고 했지, 법정근로시간으로 주 52시간 상한제를 ‘입법’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당시는 일요일 등 휴일이 1주일에 포함되느냐, 그래서 휴일근로가 주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에 해당하느냐가 논란이 되고, 대법원에서 심리 중에 있었다. 노동부가 휴일은 1주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행정해석하고서 그에 따라 근로감독관 등이 그 업무를 처리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노동부가 자신이 한 부당한 행정해석을 바로잡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1주일이 휴일을 포함해 7일이라는 건 너무도 명백한 것이므로 잘못된 행정해석을 폐기한다고 밝히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박근혜 정권에서는 2015년 9월15일 노사정 합의를 하고서 집권 새누리당이 이에 관한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나라 노동운동은 저지를 위해 투쟁해야 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했던 “연장근로(휴일 포함)를 포함한 법정근로시간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이행’하겠다는 공약이었으니, 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을 폐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이 나라 노동자들은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이 했던 대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부칙에 노동부 장관이 “2022년 12월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도록 규정했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 관련 입법 추진을 읽어 보니, 오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보완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예정된 일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주 52시간제에 관해 이 나라에서 했던 일을 보면, 박근혜 정권과 다름없는 문재인 정부를 보게 된다. 촛불시민혁명의 강을 건너와 질적으로 다른 권력이라며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말했지만, 노동자의 최장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노동제 앞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3. 사실 이 나라에서 권력은 ‘탄력적’으로 해결해 왔다. 노동제의 ‘전면이행’은 입법추진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로, 그나마도 법 집행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디 노동자의 최장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노동제만이겠는가. 경제 앞에 노동은, 기업·사용자 이익 앞에 노동자권리는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노동부처, 즉 고용노동부가 했던 일을 보면 알 수 있다.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유연근로시간제 등 근래에 행한 노동부의 매뉴얼·가이드 등을 읽어 보면 사용자를 위해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나라 노동부만큼 탄력적으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을 해석·집행하는 나라 노동부는 없을 거라고 내가 확신할 만큼 탄력적으로 했다. 노동부만이 아니다. 다른 정부부처, 특히 경제부처는 사용자 기업을 위한 것이 자신의 존재이유인 양 노골적이다. 뭐, 요즘 조국 정국에서 어느 때보다 뜨겁게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검찰이라고 다르지 않다. 노동 관련 수사 등 법 집행에서 국민경제와 기업을 생각하느라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통상임금·휴일근로 중복할증 등에서 보듯이 박근혜 정권에서건, 문재인 정부에서건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 보면 기업과 국민경제, 나라 걱정에 눈물겹다. 법대로, 하라는 대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면 될 일인데, 어쩌자고 이 나라에서 권력은 너무도 ‘탄력적’이다. 입법을 소임으로 하는 국회야 뭐라 말하겠는가. 수많은 노동입법들에서 국민경제 발전을 내세운 사용자 이익을 고려하느라 노동자권리는 엉거주춤 보장하고 말았다. 그러니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에 관한 입법을 이 나라 국회는 하고야 말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단지 얼마나 확대할 것인지만 미정일 뿐이다.

4. 지난해 입법돼 시행한 지 불과 1년3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300명 이상 사업장 등에 시행한 것인데 그로 인해 그 사업장들이 줄도산해서 폐업했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도 50명 이상 300명 미만 사업장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두고서, 당장 망할 것처럼 권력부터 사용자 자본까지 온 나라가 야단이다. 법대로 한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입법이 되지 않을 것에 대비해 6개월 이상 등으로 계도기간을 두고 사용자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할 일이 아니다. 근로기준법대로 한다면, 2022년 말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 방안을 노동부 장관이 준비하기만 하면 될 일이다. 정녕 주 52시간제를 추진한 이유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 노동자를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 법대로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기간에 관한 입법을 서둘러 추진하더니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 대비해 법 위반 사용자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대책으로 발표하고 있다. 법은 주 52시간을 초과해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법을 노동현장에서 집행해야 할 국가권력은 자신에게 맡겨진 소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난해 7월1일 300명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를 시행할 때도 있었다.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어떻게 법을 집행해야 할 국가기관이 그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당당히 발표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진다는 말인가. 근로기준법은 주 52시간을 초과해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용자에 대하여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10조·53조). 이에 대해 계도기간을 둬서 그 처벌을 유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제멋대로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하지 않겠노라고 할 일이 아니다. 그건 자신의 직무수행을 거부한 것이거나 직무를 유기하는 짓이다. 공무원이 그 짓을 하는 것이니 형법상 직무유기일 수 있고, 이를 지시한 공무원은 그가 장관이든 뭐든 교사범이 될 수 있다. 사용자 자본과 기업을 위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노라고 변명을 해도 그것이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권력이 주 52시간제 법 위반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나라는 탄력적인 권력 행사에 지쳐 있다. 검찰이 오늘 이렇게 비난을 받는 것도 거기서 비롯됐다. 검찰권력의 편의적이고 탄력적인 행사만 개혁을 말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권리에 관해 법대로 집행하지 않는 권력행사도 정당하지 않다. 노동제의 탄력적 집행은 노동자의 최장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노동제에 대한 훼손일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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