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석군 변호사(법무법인 민국)

조국 개인의 기대보다는 엄결하지 못했던 삶이 드러나며 시작된 소위 ‘조국 사태’는 그의 사퇴와 함께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여러 입장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는 좌빨이라고 공격받지만 실상 중도층에 불과한 문재인 정부의 지지세력은 한통속이 된 언론과 검찰의 개인을 향한 집중적인 공격에 충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을 서울 서초동으로 불러들여 촛불을 들게 한 이유가 됐다. 이에 진보의 여러 곳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운집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대항한 시민들의 신성한 촛불혁명이 부패한 개인에 불과한 조국을 수호하는 현장으로 바뀐 것으로 비쳤고 대중의 선택에 당혹했다.

어떤 기자는 조국 사태를 두고 ‘울타리게임’이라 칭하며, 조국 사태의 결과가 이 정부가 울타리 안 사람들의 합법적 기득권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울타리 안의 사람들이 아닌 대중은 분명 울타리 안의 조국에 감정이입하고 모여들었다. 대중이 이 사안을 단순한 울타리 안의 권력투쟁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서초동에 모여든 사람들은 구조개혁을 개인의 흠결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막으려는 기득권의 전면적이고 노골적인 총공세를 더 큰 문제라고 느꼈고 그것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며, 그러한 상황에서 피해자인, 그러면서도 기득권이라 할 조국과 그의 가족에 감정이입했다.

어떤 이들은 조국의 개인적 흠결에도 이 또한 덮어 버리려는 듯한 사람들의 지지가 불편했고, 어떤 이들은 그동안의 수많은 인권유린 사태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기득권을 누린 한 가족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만 구름같이 몰려든 대중을 불편해했다. 모두가 대중의 선택에 동의할 필요도 없고 그러한 불편함은 일응 타당하다. 다만 그러한 불편함 속에서 부러 조국과 그 가족에 대해 자행된 인권침해까지 둔감하려는 모습이 보이는 것까지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기득권인 그들에게 생긴 기득권끼리의 문제에 왜 분노해야 하냐는 모습이 날 선 어조로 표현됐다.

우리 사회에서 언젠가부터 ‘갑질’ 문제가 화두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더 이상 투쟁에 선명한 전선을 긋기 어렵고 개인화된 사안을 해결하는 문제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로 은퇴 후 은퇴자금을 모아 편의점 사장이 된 사람을 ‘자본가’로 볼 수 없으나, 이들은 ‘알바’들을 상태로 갑질을 행한다. 그러나 이들은 편의점 프랜차이즈 앞에서 다시 ‘을’에 불과해진다. 조국 가족은 기득권이었으나 그 자리에서는 분명 ‘을’에 불과했다.

세상의 변화 앞에 새로 생겨난 다양한 분야의 인권운동은 선명한 계급투쟁을 피하려는 도피가 아니라 각자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변화에 가깝다. 각자의 인권을 각자의 문제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누군가 누군가의 인권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싸움은 더욱 외로운 싸움으로 바뀐다. 또 무엇이 우선이냐를 놓고 다투는 소모전을 피할 수 없다. 1980년 노동운동 속에 있었다는 여성 지위에 대한 문제처럼 말이다. 사회구조적인 모순 해결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이 다른 사람의 덜 중요해 보이는 인권을 무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계급투쟁도 환경운동도 모두 사람답게 살자는 목적으로 하는 것일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대인들이 만든 신앙교육서인 미드라시(Midrash)에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에서 어떤 이슈로 뒤덮일 때 종종 회자되곤 한다. 조국 사태 또한 이렇게 지나갈 것이다. 다만 인권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도덕적 엄결성에 대한 불편감보다는 누군가의 인권침해에 대한 불편감이 더 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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