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 투수인 류현진 선수는 올해 화려한 해를 보냈다. 내로라하는 세계 최고 선수들 가운데 그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평균 방어율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제구력이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구속보다 떨어지지만 그는 원하는 방향에 공을 꽂아 넣었다. 야구는 속도의 경기다. 빠른 공을 더 빠른 배트 스피드로 때려야 하고, 공보다 빨리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를 뽑는다. 류현진 선수는 ‘제구력(방향)’으로 ‘속도’를 넘어섰다.

속도는 야구뿐 아니라 노동정책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얼마 전 기자들과 만나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도처럼 기업활동을 제한하는 정책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세밀하고 촘촘하게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해서도 “기업과 시장의 흡수 능력을 감안하며 가는 보완작업이 강구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인들과 만난 뒤 “노동시간단축에 대해 경제계의 우려가 크다”며 보완입법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정부의 행정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속도조절’은 노동정책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쓰인다. 노동존중을 국정과제로 밝히고 있는 정부는 ‘이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럴까. 정부 노동정책과 우리 사회 노동자 삶의 질은 ‘조절’이 필요할 만큼 숨차게 달려왔을까.

문재인 정부 3년 동안 최저임금의 평균 인상률은 10%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도 9% 인상했으며, 참여정부의 평균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보다 높은 10.6%다. 따질 것도 없지만 굳이 살피자면 현 정부 인상률은 박근혜의 4년(7.4%)보다 2.6%포인트 높을 뿐이다. 첫해 16.4% 인상이라는 착시효과를 걷어 내면 쉬어야 할 만큼 조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노동시간단축 역시 그러하다. 주 5일제(주 40시간제) 법안이 통과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이다. 연월차 휴가제도 축소, 여성생리휴가 무급화 등과 함께 국회를 통과했던 주 40시간제는 16년 뒤 주 52시간제로 둔갑해 있다. 당시 법안대로라면 2008년에는 2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까지 주 5일 노동을 하고 있어야 한다.

‘주 5일제 수혜주는 어디인가’라는 16년 전 언론기사 제목이 ‘성큼 다가온 주 52시간 근무제 수혜주는?’(2018년)으로 바뀐 사회, 정말 속도가 빠른 것인가?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가?

류현진 선수의 성공 요인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같은 방향의 공이라도 속도조절을 통해 힘 좋은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추풍낙엽으로 만들었다. 방향이 같다면 능수능란한 속도조절로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정말 속도의 문제인가? 방향의 문제 아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같은 ‘줬다 뺏기’나 ILO 기본협약과 무관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노동법 개악안의 ‘끼워 팔기’가 계속된다면 방향에 대한 신뢰가 이어질 수가 없다. 가자고 하는 산이 ‘이 산이 아닌가 보네’ 하는 생각이 들고,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에 달이 보이지 않아 손가락 끝에 대한 의심이 든다면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존중과 정부의 그것은 동상이몽일 가능성이 높다.

위험의 외주화로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이 끊이지 않고, 원·하청 간에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지 않으며, 골목상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어렴풋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돼 버렸다면 이제 정부의 지향점을 재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방향이다.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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