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금융계의 파업이 불법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파업이 시작되면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뒤 공권력을 투입, 강제진압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해법논의가 학계와 법조계, 노동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공공부문 사업장의 쟁의행위는 여지없이 불법으로 규정돼 이들 노조의 파업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킨 현행법 및 제도를 우리 상황에 맞도록 ‘파업전(前) 완충장치’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1일 파업에 들어간 금융노조가 주장하고 있는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유보등의 요구사항은 현행법상 노사 협상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내건 총파업은 불법집단행동으로 규정된다. 노동부는 “금융노조의 파업목적이 근로조건 개선 등 조합원의 이익부분이 아니라 정부정책과 관련된 사안이라 현행 노사관계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중앙노동위원회도 10일 금융노조측의 조정신청에 대해 조정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욱이 은행·병원·철도 등의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파업목적이 노동조건과 관련돼 있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상 중노위의 중재안을 노조가 무조건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불법으로 규정된다.

이에 따라 지하철·한국통신 등 공공부문 노조의 경우 파업에 들어갈 때마다 ‘불법규정-공권력투입’이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다. 특히 정부는 이들 노조가 파업선언을 할 때마다 불법으로 규정한 뒤 ‘불법집단’과 협상에 나서는 자가당착의 행태를 보여왔다.

이에 대해 학계와 법조계에서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고는 이같은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기덕(金基德)변호사는 “헌법상 공무원을 제외한 나머지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보장돼 있으나 하급법인 노동법에서 이를 규제하고 있어 위헌소지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국민생활과 관련된 공익부문 사업장의 파업을 무제한 허용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手乭·노사관계학)교수는 “정부가 노조측의 요구가 노사협상 사항 아니라는 이유로 불법으로 규정한 뒤 협상테이블에 나서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논리”라며 “독일의 경우 직업상의 직접적인 조건뿐만 아니라 실업보험·산재보험 등의 문제도 노사협상 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교수는 또 “금융노조 총파업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노사 당사자들이 청문회나 공청회를 통해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완충장치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합법·불법이라는 잣대만을 갖고 관리 차원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오면 막는다’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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