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비젼)

“전화로도 상담이 가능한가요?” “그럼요. 말씀하세요.” 말이 떨어지자 상담자는 일한 지 일주일 만에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부당해고 상담은 이야기가 다소 길어지더라도 참을성 있게 다 들어야 한다. 그래야 상황을 이해하고 쟁점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울한 사연을 듣기에 앞서 나는 상담자의 이야기를 차갑게 끊고 먼저 질문한다. “그 사업장의 상시 근로자수는 5명이 넘나요?”

5명 미만 사업장은 현행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 적용받기 때문이다.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제한하는 규정(23조)이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 조항(28조)이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사용자 귀책사유로 회사에 일이 없어 쉴 때 임금의 70%를 받을 수 있는 휴업수당(46조), 1일 8시간 법정근로시간(50조), 연장·야간 및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56조), 연차 유급휴가(60조) 등은 적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조항들이다.

상시 사용 근로자수에 따라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달리 취급하는 것이 평등원칙에 합치되는지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999년 9월16일 판결(98헌마310)에서 “법률조항에서 ‘상시 사용 근로자수 5명’이라는 기준을 분수령으로 해서 근로기준법의 전면 적용 여부를 달리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한편으로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하면서 근로기준법의 법규범성을 실질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입법정책적 결정으로서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평등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현 단계에서 상시 사용 근로자수가 4명 이하인 사업장으로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일견 차별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는 점진적 제도개선으로 인한 부득이한 것이므로 이를 두고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헌법에 따라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함으로써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법이 왜 오히려 보호대상인 노동자에게 영세 사장님의 어려움이나 근로감독 능력 등 행정력 부족 문제로 인한 불이익을 혼자 책임지라고 하는지 나는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그 논리대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판단 이후 20년이 흘렀다. 판단 당시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근거로 사용된 전체 사업장수 대비 5명 미만 사업장 비율은 77%에서 62.1%로 줄었고, 이들 사업장에 고용된 상용근로자수 역시 전체 상용근로자수 대비 18%에서 12.3%로 줄었다.1)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1인당 국민총소득이 2018년 3만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점진적 제도개선은 여전히 없다. 200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했고, 2012년에는 국회입법조사처가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제도는 개선되고 있지 않다.

건물주가 건물의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 두면,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 건물을 관리를 포기한 건물로 판단하고 돌을 던져 나머지 유리창까지 모조리 깨뜨리게 된다고 한다. 사소해 보이는 무질서나 작은 범죄들을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범죄학 이론,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다. 근로시간단축, 주 52시간제(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등 노동 관련 입법은 떠들썩하게 기사화됐지만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다. 더해서 이제는 5명 미만 사업장에 최저임금법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거리낌 없이 나오고 있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는 사이 이놈 저놈이 던지는 돌에 맞아 멀쩡하던 유리창까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그대로 둔 채 ‘노동존중’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하루 8시간 일하고, 일했으면 연차휴가도 있고, 잘릴 때 잘리더라도 정당한 이유인지 따져라도 볼 수 있는 최저기준만큼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노동법이 개선될수록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게 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깨진 유리창부터 수리하자.

<각주>
1) 헌법재판소 사건 기록에 편철된 1997년 말 기준 통계청 자료와 2017년 말 기준 고용노동부 통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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