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제 동료는 올해 추석 전날까지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는데 40일 넘도록 복직이 안 되고 있어요. 그뿐이 아니에요. 택배기사들이 돈을 모아서 하차업무를 하는 알바에게 알바비를 줘요. 이게 말이 되나요?"

로젠택배 울주지점 영업소 택배노동자인 염성철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로젠택배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운영된다. 본사와 위탁계약을 맺는 지역지점은 다시 영업소와 계약을 맺는다. 영업소 팀장으로 불리는 택배노동자는 일종의 소사장이다. 영업소는 취급소 택배노동자와 또 계약을 체결한다. 영업소나 취급소는 언제 사라질 지 모른다. 염씨와 동료도 같은 처지다.

로젠택배 배달노동자들이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로젠택배 본사 앞에 모였다. 배달노동자들은 로젠택배 본사가 지역지점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생겨났다고 지적했다. 다단계 하도급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수수료 수입은 적어지고 고용은 불안해진다. 택배연대노조와 전국택배노조가 참여한 택배노동자기본권쟁취투쟁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탁에 위탁 거듭하는 로젠택배"

로젠택배 홈페이지를 보면 로젠택배는 전국 298개 지역지점과 위탁계약을 맺는다. 지점은 다시 영업소에 업무를 맡기고 일부 영업소는 취급소와 위탁계약을 맺고 물량을 배분한다. 로젠택배가 밝힌 영업소는 8천368개다. 투쟁본부는 "영업소 숫자에 취급소까지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취급소 숫자는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분명한 것은 영업소 숫자가 곧 택배노동자 숫자를 뜻한다는 것이다.

구조만큼이나 명칭도 복잡하다. 취급소를 따로 두지 않는 영업소는 영업소장으로, 취급소를 운영하는 영업소는 팀장으로 불린다. 말이 영업소장이지 사업자 등록증을 가진 1인 택배회사다. 취급소장도 마찬가지다.

투쟁본부는 복잡한 하도급 구조가 관리책임을 피하려는 로젠택배 꼼수 때문에 생겼다고 본다. 소사장을 두고 피라미드식으로 관리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택배노동자 처우다. 임금격인 수수료는 하도급 구조 단계마다 깎인다. 로젠택배 남울산지점의 경우 배달 한 건(배송료 3천500원 기준)당 1천200원의 수수료를 본사에서 받지만 영업소 팀장은 800~1000원, 취급소 택배노동자는 건당 600~800원으로 줄어든다.

수수료뿐만이 아니다. 투쟁본부에 따르면 지점은 상하차 비용을 영업소·취급소 택배노동자에게 전가한다. 물건이 분실될 경우에도 택배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한다.

투쟁본부 관계자는 "로젠택배의 하도급 구조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상 직접운송 의무제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라며 "로젠택배는 지점들의 이런 중대사항 위반을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화물자동차법 11조의2에는 "운송사업자는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화물에 대해 50% 이상을 해당 운송사업자에게 소속된 차량으로 직접 운송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고액 권리금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로젠택배 배달노동자들은 지역지점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권리금이 노동환경을 더 나쁘게 만든다고 하소연했다. 투쟁본부는 "모 지역의 경우 지점 거래에서 권리금으로 5억원을 줬다는 소문이 무성하다"며 "권리금이 횡행하면서 현장 시설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들은 로젠택배 지점이 운영하는 많은 물류터미널에 자동레일이 없어 택배 분류작업을 할 때 손으로 레일을 돌려 가며 일한다고 증언했다. 특히 부산 강서지점은 열악한 터미널 환경 탓에 비가 올 때마다 택배노동자가 곤욕을 치른다. 해당 지점에서 일하는 정상민씨는 "터미널에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금세 바닥에 물이 찬다"며 "까치발을 들고 간신히 물건을 옮긴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투쟁본부는 "로젠택배는 지점의 권리금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젠택배 관계자는 "지점에서 적법하지 않게 계약을 해지한 부분이 있다면 페널티를 주겠다"며 "지점 내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이야기해 주면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사업을 하든 안 하든, 팔든 안 팔든 사업주의 자유이기 때문에 권리금을 주는 것은 제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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