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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카오스
▲ 한석호 노동운동가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작금의 보수 대 진보 대결은 한국 정치지형에서 특이한 상황이 아니다. 굳이 특이한 점을 찾자면, 이전까지 대결에선 진보와 보수의 세가 순차적으로 결집된 것에 비해 이번에는 동시에 결집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가 절단 나지 않을까 걱정할 이유도 없다. 대결의 중심축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이 갈등만으로도 지키고 얻을 게 많은 지배세력이기에 상대가 아무리 미워도 극단으로 몰아가지 않을 것이다. 적절한 수준에서 출구를 모색하고 타협할 것이다.

문제는 진보 내부다. 이리저리 얽힌 관계 탓에 감정과 발언을 최대한 조절하고 있어서 격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진보 내부는 심각한 내상에 신음하고 있다. 1987년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유지되던 진보의 기본 가치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 일각의 실제 삶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진보가 공유한 기본 가치는 적절한 수준의 평등·공정·정의다. 진보란 이념의 폭이 넓고 주장이 세서 갈등이 많은 연합군 성격인데, 진보라는 대명사를 공유하며 동일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까닭은 그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계 진보의 공통분모인데 그것이 한국에서 무너지고 있다. 진보의 가치를 다시 고민해야 하는 카오스 상태로 떨어졌다.

화두가 조국이 돼 버렸다는 점 때문이다. 호불호를 떠나 조국은 진보의 상징이었다. 사노맹 출신에, 서울대 교수에, 실천하는 강남좌파라는 요소를 적절히 버무리며 조국은 진보의 상징 역할을 했다. 한데 조국 일가 삶은 진보가 그토록 비꼬며 규탄한 자유한국당 부류 삶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극심하게 불평등하고 부정의·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적당히 혜택을 보는 수준을 훌쩍 넘어 더욱 악화시키는 강남귀족이라는 게 드러났고, 진보의 내로남불 상징으로 전락했다.

거기서 멈춰야 했다. 그러나 조국의 어깨에 올린 차기 대선후보라는 짐의 무게와 노무현 정부 때의 검찰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오른 청와대는 멈추지 못했다. 화살을 당기고 말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화살은 추위에 떨던 자유한국당에 불씨를 선물하는 불화살이 됐고, 박근혜 탄핵 촛불의 불씨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진보에는 그 불씨마저 꺼뜨리는 얼음화살이 됐다. 진보의 기본 가치는 무덤으로 굴러떨어졌다. 조국이라야 검찰개혁을 할 수 있고 레임덕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과 달리, 조국 임명 뒤 대통령 지지율은 위태롭게 버티고 있고 사법개혁안 국회 처리는 더 어려워졌다.

기회는 있었다. 조국을 검찰개혁 도구로 쓰되, 불평등·불공정·부정의를 악화시키는 조국의 삶은 잘못됐다고 발언하고 성찰 흐름을 만들자고 해야 했다. 그래야 진보가 극심한 불평등·불공정·부정의 구조의 밑바닥에서 아파하는 대다수 청소년과 청년 등에게 조금이나마 덜 미안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 들어간 86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역사와 민족 앞에서도 덜 부끄러울 수 있었다. 자유한국당 공세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나쁜 방향으로 흘렀다.

상황은 기승전‘진영논리’의 늪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한국의 진보에 ‘조국 수호’라는 서초동 촛불 이미지가 덧씌워졌고, 급기야 불평등·불공정·부정의를 옹호하는 집단으로 국민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서초동 촛불은 ‘성찰하며 검찰개혁, 조국을 검찰개혁의 도구로’라는 내용으로 전환해야 했으나, 그들은 진보 내부의 그러한 문제제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불법을 넘나든 웅동학원과 사모펀드 얘기는 굳이 않겠다. 초·중·고에서 가르치는 교육의 공정성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 그것을 언급해야 할 만큼 한국의 진보 수준이 이렇게 낮았나 한숨만 나오는데, 진보 일각에서 조국 일가의 삶은 불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알 만한 교수들까지 동조하고 있어 언급한다.

아이들이 교육 출발선에 서 있다. 한 아이는 부모 자가용에 앉고,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한 아이는 맨몸으로 서 있다. 한 아이는 휠체어에 앉고, 한 아이는 출발선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때 출발 신호를 보내는 것은 불공정이다.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출발선에 서도록 해야 하고, 휠체어의 아이는 출발선보다 앞서도록 해야 한다. 출발한 뒤에도 그렇게 달리게 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 진보가 공유하는 교육의 공정성이다. 북유럽을 비롯한 상당수 나라에서는 보수도 동의하는 기본 가치다. 한국의 진보는 그걸 받아들였다. 꼴찌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고 함께 외쳤다. 1등만 챙기는 더러운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다. 그러나 조국 일가는 자가용도 부족해서 비행기에 태워 날았다.

물을 다시 담아야 한다. 조국을 죽이자는 게 아니다(조국이 추진하는 개혁 내용을 보면 볼수록 대다수 국민의 삶보다는 재벌과 권력 상층의 비리에 유리할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지만, 평가는 이후로 미루자). 이왕 이렇게 된 것, 조국이 검찰개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래 봐야 한 달 남짓일 듯싶다. 다만 조국 일가의 행위가 심각한 불평등·불공정·부정의였음을 인정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차분하게 평가하고 성찰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보가 산다. 진영논리에 빠져도 정도껏 빠져야지, 무덤에 굴러떨어져 가쁜 숨 몰아쉬는 진보의 평등·공정·정의 기본 가치에 관 뚜껑까지 덮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말이다.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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