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빛나라 변호사(법무법인 현)

20대 청년이 회사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산업재해 치료를 받는 상황에서 회사 직원이 위로금이라며 소정의 금액을 주면서 종이에 서명하라고 했고, 회사를 믿었던 청년은 제대로 읽어 보지 않은 채 서명을 했다. 나중에 보니 그 종이에는 회사에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기재돼 있었다.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는 오토바이 배달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산재 신청을 하려고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작성한 산재적용제외신청서가 제출돼 있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사장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필요하다면서 서명하라고 했던 서류 중에 산재적용제외신청서가 포함돼 있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일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 회사는 회사 지정병원인 정형외과에 데려갔고, 병원에서는 심각하지 않으니 회복하면 회사에 복귀하라고 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이상하다는 생각에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겼고 응급수술이 필요한 중증 화상으로 진단받았다.

지하 공사작업 도중 천연가스 누출로 폭발사고가 발생해 얼굴을 포함해 전신에 중증 화상을 입은 노동자는 또 어떤가. 참혹한 사고, 아비규환의 현장,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회사는 119나 경찰을 부르지 않고 회사 직원 차량으로 조용히 회사 지정병원으로 옮겼다. 산재 신청을 할 때는 단순 화재로 기재해 회사는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과연 당신 회사는 당신 편일까. 산재를 당한 이후 회사와 대립적인 관계가 되기보다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는 산재노동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수년 혹은 수십 년을 몸담은 회사가, 회사를 위해 일하다가 다친 당신을 손쉽게 배신할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노동자와 회사가 노동과 임금을 교환하던 일종의 협력관계는 산재 발생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변화한다. 회사는 산재 발생에 과실이 있는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고, 업무상과실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 조사를 거친 후 경우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민·형사상 대립을 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짜여지는 셈이다.

노동자는 산재 이전에도 사용자 업무지시에 따르는 사용종속관계에 놓여 있는 상대적 약자인데, 산재를 당한 이후에도 회사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약자다. 오히려 사고 이전보다 더 약해졌다. 회사를 떠나 홀로 자립할 육체적 능력과 경제적 능력조차 잃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했으니 산재보험급여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사고를 당해 보면 산재 비급여 치료비와 간병비·재활치료비 등 산재 재해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많다. 산재요양 종결 후에 생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회사는 당신이 건강할 때까지만 당신 편이다. 따라서 일단 산재가 발생하면, 막연히 회사측의 온정에 기댈 것이 아니라, 차분히 유리한 자료를 수집하고 회사가 어떤 식으로 나와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회사가 제시하는 서류에 서명할 때는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그 속에 당신도 모른 채 당신을 옭아맬 족쇄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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