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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포럼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 뜯어보니
▲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장마다 찾아오는 약장수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경제포럼(WEF)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Global Competitiveness Report)'가 나왔고, 국내 언론은 자기 입맛에 맞게 우려먹고 있다. "자기 입맛에 맞게"라는 표현이 칭찬일 수 있는데, 대다수 언론이 WEF의 보고서를 직접 분석하지 않고 기획재정부가 뿌린 보도자료만 갖고 기사를 내기 때문이다.

WEF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 양적 분석과 질적 분석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양적 분석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이 만들어 놓은 자료를 활용한다. 질적 분석은 '세계경제포럼 경영진 의견조사(World Economic Forum’s Executive Opinion Survey)'라는 방법을 쓴다. 쉽게 말해 조사 대상국에서 활동하는 경영진(자본가로 읽자)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다.

WEF는 보고서 '글로벌 경쟁력 지수(Global Competitiveness Index 4.0)'에서 "생산성 수준을 결정하는 제도·정책·요소의 조합"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12가지 분야 103개 지표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평가한다. 0점에서 100점까지다. 100점에 가까울수록 '생산성 성장' 제약요인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상태(ideal state)"가 된다.

WEF는 '글로벌 경쟁력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조사 대상국에 협력단체를 둔다. 한국에서는 기재부 산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관여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전경련, 그 다음에는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한국측 파트너로 조사를 책임진 바 있다.

해당국 협력 파트너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영진 의견조사'에는 올해 139개 국가(경제권)에서 1만2천987명이 참여했다. 한국측 응답자는 100명이다. 조사 대상 경영진(executive)들은 주관적 의사를 묻는 78개 질문에 답한다. 7개 수준으로 평가하는데, 1수준은 "세계 최악", 7수준은 "세계 최고"를 뜻한다.

한국 '거시경제 안정성' 세계 1위, 그런데…

2019년 141개 조사 대상국 중에서 한국은 79.6점을 얻어 전년보다 두 단계 오른 1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거시경제 안정성에서 1위를 했는데, 여기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한국을 포함해 33개 나라가 공동 1위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 속한 지표는 2개, 즉 인플레이션(88개 나라 공동 1위)과 부채역동성(34개 나라 공동 1위)뿐이다.

8위를 한 보건 분야도 관련 지표가 기대수명 1개뿐이다. WEF 보고서 자체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본 경쟁력 평가이기 때문에 일의 세계(the world of work)에서 보건 분야 생산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인 산업재해 사망률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거나 다치는 비율을 포함한다면 한국의 보건 분야 순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12개 분야 중 경쟁력이 가장 낮은 분야는 56점으로 59위를 기록한 '생산물 시장(product market)'이다. 이 분야는 '국내 경쟁'과 '무역 개방성' 두 영역으로 나뉘는데, 한국은 각각 66위(53.5점)와 67위(58.6점)로 평가됐다. '국내 경쟁'에서 최저로 평가된 지표는 '시장 지배력'으로 93위(42.8점)다. '무역 개방성'에서 최저로 평가된 지표는 '무역 관세'로 91위(50.9)다. 참고로 전자 1위는 스위스, 후자 1위는 홍콩이다.

그런데 시장 지배력 지표는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들의 객관적 데이터를 갖고 평가한 것이 아니다. 경영진의 주관적 의견을 물은 것이다. "귀하의 나라에서 기업 활동의 특징은 어떻습니까? 소수 그룹이 지배한다=1수준; 많은 기업들로 분산돼 있다=7수준)"라는 질문에 한국에서 활동하는 경영진 100명이 대답한 결과다. 이 지표를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무역 관세' 지표는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무역센터(International Trade Centre)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평가한다. WEF가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무역 관세와 관련해 다른 나라 순위를 살펴보면 홍콩 1위, 싱가포르 2위, 유럽연합(EU) 28개국 7위, 호주 37위, 미국 38위, 일본 39위, 스위스 46위, 남아프리카공화국 90위, 중국 123위, 브라질 128위, 인도 134위 순이다. 한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중간에 위치해 있다.

'노동시장' 경쟁력 꼴찌의 실체

WEF가 매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문제로 지목한 '노동시장' 분야를 들여다보자. 이 분야는 '유연성' 영역 8개 지표와 '능력주의와 인센티브' 영역 4개 지표로 구성된다. 주요 지표는 <표3>과 같다.

<표3>에서 보듯 한국의 '임금 결정 유연성'은 84위다. '노동유연성의 천국'이라 칭송받는 덴마크(133위)나 네덜란드(118위)보다 높다. '인력감축 비용'은 116위로 독일(100위)과 비슷하다. '채용과 해고의 관행', 즉 자본가가 고용에서 누리는 자유는 102위로 스웨덴(98위)·일본(104위) 수준이다. 기업이 노동자 복지를 위해 직간접으로 부담하는 세금이나 기여금을 뜻하는 '노동 세금 부담(labour tax rate)' 순위는 한국이 55위로 서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80위)보다 높다. 쉽게 말해 노동자 복지를 위해 기업이 져야 할 부담이 그만큼 덜하다는 뜻이다.

반면 '생산성에 연동한 임금 결정'은 14위로 스웨덴(36위)이나 일본(35위)보다 유연성이 크다. '남녀 임금 격차'는 59위로 일본(62위)과 비슷한 중위권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과 홍콩을 빼고는 '노동자 권리' 지표와 '노사협력' 지표가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노동자 권리가 잘 보장될수록 노사협력 순위도 높다.

<표4>를 보면 한국의 '노사협력' 순위가 최하위권인 130위가 된 이유가 뚜렷이 드러난다. 노사협력 수준을 평가하는 객관적 데이터가 있는 게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경영진' 100명의 주관적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채용과 해고'도 '경영진'들이 행사하는 자유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생산성과 연동한 임금 결정에서는 주요 경제국들과 비교해 상당한 수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경영진'들은 답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경영진, 즉 자본가들의 주관적 평가로 한국 노동시장이 갖는 경쟁력 여부를 따지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세계은행·국제노동기구(ILO)·국제노총(ITUC) 등 공신력 있는 국제 기구들이 제공하는 데이터가 보다 과학적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 데이터로 평가하는 지표들을 보면, 사회보장제도 미비로 인한 '인력 감축 비용' 부담을 빼고는 주요 경제국들과 비교해 한국에서 활동하는 자본가들의 글로벌 경쟁력에 부담이 되는 요소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남녀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노동자 권리를 개선하는 게 '글로벌 경쟁력'을 올리는 첩경이라는 게 WEF 보고서가 주는 교훈이다.

글로벌 인더스트리 컨설턴트 (globalindustryconsult@gmail.com)

윤효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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