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공급사슬(supply chains)의 최상층에 있는 대기업들이 운송계약을 쥐어짤 때, 공급사슬의 하부에 놓여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안전을 담보로 하는 비용 삭감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운송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더 오랜 시간 더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매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화물 트럭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그들의 가족과 지역공동체는 깨어진다.”

호주운수노조(Transport Workers’ Union of Australia, TWU)가 지난 십수 년간 진행해 온 안전운임(Safe rates) 캠페인을 요약한 문구다. 안전운임 캠페인은 노동권을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선하고,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며, 노동조합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호주운수노조의 포괄적 캠페인이다.

호주운수업 역시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아래서 다단계 하청과 차주 겸 기사인 특수고용의 확산을 경험했다. 한편 울워스(Woolworths) 같은 대형마트 체인이 유통시장을 독과점하면서 톨(Toll)과 같은 대형 물류기업에 하청을 주고, 이들은 다시 소형 운송회사에 재하청을 주는 공급사슬이 형성됐다. 공급사슬의 상층에 있는 대형마트와 대형 물류기업은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물류비용을 줄이고 화물차 기사들의 노동과정을 통제하지만, 하층의 소형업체와 화물차 기사들은 삭감된 운임에 시달리며 이를 벌충하기 위해 장시간 위험한 노동으로 내몰렸다. 매년 평균 330명이 화물트럭과 관련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으며, 화물차 기사들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다른 직종에 비해 15배 이상 높다.

호주운수노조는 화물차 기사들과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최상층부 대기업들이 공급사슬을 통해 운임삭감과 위험한 노동을 강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안전운임법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다. 그 성과로 2012년 안전운임법(Road Safety Remuneration Act)이 제정됐고, 안전운임위원회(Road Safety Remuneration Tribunal)는 호주 전역의 화물운송업 관련 행위자들에게 화물운송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책임지도록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화물차 기사들은 대기시간, 상하차시간, 운행시간, 차량 주유·정비시간 등 운송과 관련된 모든 시간을 산입한 최저운임을 보장받는다. 화주와 대형운송업체는 화물차 기사를 사용하는 운송업체가 최저운임제를 지키도록 감독할 책임이 부여된다.

안전운임법 제정 이후 호주 사용자단체와 보수언론도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격렬한 여론전을 벌였다. 우리의 최저임금 논란과도 매우 유사하게, 이들도 안전운임제를 실시하면 소규모 운송업체와 특수고용 화물차 기사들이 실업자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결국 보수연립정부는 2016년 안전운임법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뉴사우스웨일스주 등 이미 수십년 전부터 안전운임제를 실시했던 주들은 안전운임법이 폐지된 이후에도 안전운임제를 유지·발전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의 안전운임제 투쟁은 한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에도 영감을 줘 오랜 투쟁 끝에 2017년 우리도 안전운임제를 법제화했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차원에서는 안전운임제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더욱 눈여겨볼 지점은 호주운수노조가 공급사슬 최정점에 있는 화주 및 물류대기업과 관련된 노동자들을 전략적으로 조직하고, 대기업을 압박해 안전운임제의 핵심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체결하는 투쟁을 해 왔다는 점이다. 화물차 기사를 직접고용하지 않은 화주들은 단체교섭에 응할 법적 의무는 없지만, 수년간의 투쟁으로 안전운임과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호주운수노조 간부는 안전한 운임과 노동조건이 실현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사업장에 출입하고 관련 자료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

호주운수노조의 안전운임 캠페인은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요구와 사회적 요구를 연결하고, 조직화와 입법 투쟁을 결합해 전체 산업을 지배하는 ‘진짜 사장’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투쟁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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