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투 파테레 레겜 쿠암 입세 페키스티(Tu patere legem quam ipse fecisti). 네가 만든 법을 너에게도 적용하라는 뜻의 로마법 격언이다. 통치자도 자신이 만든 법에 구속된다는 것, 이것이 법치의 핵심이다. 법이 권력의 도구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법은 권력 그 자체를 구속하는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법은 권력이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목에 걸어 놓은 올가미다.

너의 법을 너에게도. 이 격언이 살아 있는 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이유는 이 법에 구체적 인간의 자의가 개입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율법 앞에 모든 기독교인이 평등하고, 만유인력의 법칙 앞에 모든 근대인이 평등하듯이, 인간이 만든 법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적어도 그것이 형식적 법치주의의 이상이다.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면 자연스럽게 이끄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이 생긴다. 불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의 구분을 말하는 것이다. 수렵 채취 사회에서도 타고난 자연적 능력의 차이에 따라 남들보다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냥터에서는 그 사람이 무리를 이끌 것이다. 나물을 채취하러 갈 때는 독초와 약초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의 의견이 중시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할의 구분이 신분의 불평등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치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답이다.

법이 권력자의 자의에 좌우될 뿐 권력자의 자의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을 이용한 지배(rule by law)에 불과할 뿐이지 법의 지배(rule of law)와는 상관이 없다. 물론 통치 기술로서의 법은 통치자의 뜻에 따라 굴절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통치자의 자의성을 허용한다는 뜻은 아니다. 입법자의 법이 입법자를 구속한다는 법원칙은 근대법의 토대를 구성하는 서양 기독교 문명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신은 법을 제정하는 입법자의 형상을 취하고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제정한 법을 반드시 지키는 언약의 신이기 때문이다.

동양의 법가와 법치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장터에 나무 기둥을 세웠던(입법했던) 상앙의 고사가 말해 주듯이 법가는 법이 모두에게 공평무사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 법은 군주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군주는 법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법가는 법을 힘에 의존케 함으로써 법을 효과적인 통치술로 만들고자 한다. 법치는 힘을 법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권력의 자의성을 법에 붙들어 매려고 한다. 법가에서는 군주가 법의 근거다. 반면 법치에서는 법이 군주의 근거다.

법치의 이상이 살아 있는 시절에는 국가를 비롯해 다양한 인간 사회와 집단이 법치의 이상을 조직 원리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기업은 국가의 통치 원리를 기업의 경영 원리로 이식했다. 국가의 입법권은 사용자의 사규 제정권으로, 행정권은 인사·노무 관리권으로, 사법권은 징계권으로 번역됐다. 국가가 주권을 행사하듯이, 사용자는 사업의 주권자로 간주됐다.

그러나 혼동하면 안 된다. 국가가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이 국가의 자의적 통치를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도 자신이 만든 법에 구속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듯이, 사용자가 사업의 주권자로 간주된다는 것은 회사 운영을 사용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용자의 권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에 의해 사용자의 권한 자체가 구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법이 구사하는 모든 규범적 장치들, 즉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그리고 나아가 노동법 그 자체는 바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국가가 너의 법을 너에게도 원칙을 적용하지 않을 때 법치는 저항권의 이름으로 실질적 법치주의를 예비한다. 형식적 법치주의가 규칙의 적용에 있다면, 실질적 법치주의는 규칙의 발견에 있다.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갈등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갈파했듯이 좋은 사회는 좋은 법에 기초하고, 좋은 법은 언제나 대립과 불화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 법치주의의 원리는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노동법은 갈등과 쟁의를 통해 더 좋은 법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더 좋은 기업을 만들 것이라는 신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법치의 이상이 숨 쉬던 시절에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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