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가 직장내 성범죄 가해자 해고처분과 관련해 “비위행위에 비해 양정이 과하다”며 거듭 부당해고 판정을 내려 비판을 받고 있다.

성범죄 사건은 특성상 행위 입증에 어려움이 따른다. 사건 당시 정황이나 주변인 증인심문 등 충분한 조사를 통해 적절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노동위는 피해자 조사도 없이 가해자에게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최근 2년6개월간 직장내 성범죄로 인한 해고처분 가운데 부당해고로 구제받은 사례가 10명 중 3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근로기준법상 해고사유와 징계양정의 적정성만을 봤다.

성범죄 사건 특성상 부당해고 판단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사용자 조치의 적절성 여부도 판단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남녀고용평등법 14조(직장내 성희롱 발생시 조치)에 따르면 사용자는 성범죄 신고를 받거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 없이 사실확인을 위한 조사를 하고, 사실이 확인되면 지체 없이 가해자에 대해 징계·근무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해당 업체 “명백한 성범죄, 해고는 정당”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직장내 성범죄로 인한 해고 중 부당해고로 구제받은 경우가 3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도별 중앙노동위원회와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인정(일부·전부인정 포함) 건수는 2017년 전체 15건·37건 중 6건·12건이다. 지난해에는 22건과 63건 중 7건과 15건에서 부당해고 판정이 나와 가해자가 구제됐다. 올해 6개월 동안은 45건과 122건 중 13건과 35건이 부당해고로 인정됐다.

2017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에게 직장내 성범죄 발생 예방을 위한 의무와 함께 사후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노동위의 이 같은 부당해고 판정은 성범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근기법상 해고사유와 징계양정의 적정성만을 판단해 이뤄졌다는 것이 한정애 의원의 설명이다. 실제 인테리어 가구업체 H사가 직장내 성범죄 사건으로 가해자를 해고처분했는데, 노동위는 “비위행위에 비해 양정이 과하다”며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H사는 2017년 12월22일 회식 후 귀가 중 택시에서 벌어진 직장내 성범죄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5월 가해자를 징계해고했다. 회사는 2017년 수습교육생 성범죄 사건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후 직장내 성범죄 관련 초기 대응과 처벌을 강화한 상태였다. 가해자는 해고 한 달 뒤 피해자가 사직하자 같은해 7월 노동위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당시 사측은 노동위 조사에서 “(가해자가) 만취상태였던 피해자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은 성희롱·성추행에 해당하므로 징계사유가 존재한다”며 “후배직원인 피해자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위치에 있고 직원의 30% 이상이 여직원인 회사 특이성을 고려하면 (가해자의) 행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므로 해고는 양정이 적정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위 피해자 조사 없이 가해자 행위 ‘우발적’ 판단

노동위 판단은 회사와 달랐다. 서울지노위는 지난해 9월 “근로자가 만취한 피해자의 손을 잡고 입맞춤 등의 성희롱을 한 행위는 징계사유로 인정되나 그 비위행위가 우발적이고 단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이므로 해고는 양정이 과도해 부당하다”며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중앙노동위 역시 올해 1월 같은 판단을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노동위는 △성희롱 직후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등 자신의 행위를 후회·반성하고 △의도적·반복적으로 (성범죄 행위가) 행해졌다고 판단할 만한 정황이 없으며 △피해자와 업무상 협조관계에 있어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판단기준으로 들었다. 그러나 성범죄 신고 직후 작성된 진술조서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와) 너무 붙어 있어서 약간 혹한 마음이 생겼다. 두 번 정도 그랬던 것 같다”거나 “피해자 혼자 거주하는 집 4층까지 따라 올라가 차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의도적·반복적으로 행해졌다고 판단할 만한 정황이 없다”는 노동위 판단과 대비되는 진술이다. 가해자는 사건 발생 5개월 후 노동위 조사 당일에야 정식 자필사과문을 피해자에게 보냈다.

한정애 의원은 “노동위가 직장내 성범죄 발생 맥락과 특수성을 감안해 부당해고 적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함에도 상황의 전체적인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가해자 편만을 들어 사용자측 판단보다 더 후퇴한 결과를 도출했다”며 “성범죄 사건은 입증의 어려움을 고려해 사건 발생 정황이나 주변인에 대한 증인심문 등 충분한 심리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부당해고 구제사건 중에서도 성범죄와 연계된 사건은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며 “근기법 기준으로 해고사유와 징계 적정성을 판단할 뿐 아니라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른 사용자 조치가 적절했는지 여부도 판단요소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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