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대변인

“행복한 가정은 다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유가 제각각인 불행한 사람들의 속사정을 우리는 알 수 없을뿐더러 관심도 갖지 않는다. 그 불행이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극적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귀를 기울인다. 그들의 이야기를.

은범이의 사고는 지난해 4월에 일어났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주 오던 차량과 부딪쳐 목숨을 잃었다. 아이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플랫폼 배달노동자들의 안전실태를 다룬 최근의 기사를 보기 전 지난 1년반 동안 나는 은범이의 사고를 알지 못했다. 뉴스를 검색해 보면 이 내용을 다룬 기사는 두어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사고 7개월 뒤 사장이 벌금 30만원을 받았다는 보도였다.

은범이의 불행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누나들에게 용돈받는 것이 마음에 걸려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집안형편 때문일까. 면허가 없는 아이에게 개의치 않고 배달일을 시킨 사장 때문이었을까. 가로등으로도 밝힐 수 없는 어두운 도로의 급커브 때문일까.

최근 3년간 열여덟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청년 32명이 은범이와같이 오토바이 배달을 하다가 사망했다. 한 달에 한 명꼴이며, 청년 산업재해 사망 원인 중 1위였다.

이들이 겪은 불행의 사연은 제각각일 수 있지만, 그 원인은 복잡하지 않다.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절반가량이 30대 미만 청년과 은범이 또래 스무 살 미만 아이들이다. 이들의 수는 확대되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숫자는 가늠할 수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시장은 배달앱 서비스 거래액 1조5천억원(2015년), 배달음식 시장규모 20조원대에 이른다(은범이가 일했던 식당도 현재 배달앱을 통해 배달을 하고 있다).

상황은 이러하지만 노동자성 인정부터 산재 적용까지 배달노동자에 대한 법과 제도적 보호는 지극히 미비하다. 고용노동부의 산재관리 항목에 ‘배달업’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니, 청년 배달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업주가 검찰에 송치된 사례가 단 한 건에 불과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안전한 배달은 ‘사람’이 아닌 ‘음식’을 위함이었으며, 무법지대는 도로가 아닌 노동현장이었다.

우리는 흔히 ‘안전 불감증’을 말한다. 귀에 익숙한 이 말은 익숙한 만큼 공허하다.

구의역 김군과 제주 특성화고 이민호군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 김용균씨를 보내고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개정됐지만 여전히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며, 위험은 약자에게 전가된다.

지난 10년 동안 산재로 다친 노동자는 99만여명이고,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만여명이다. 이에 대한 실형선고는 1%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은 열여덟 살 은범이보다는 장관의 딸과 야당 원내대표의 아들이 비슷한 나이에 받았던 표창장과 논문, 인턴 활동에 쏟아진다. 누군가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자연스레 설명되고 보호받는다.

분명하지 않은 것들로 어수선한 세상에서 확실한 한 가지는 있다. 수많은 촛불과 함성이 광장과 거리를 밝힐지언정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라이딩하는 은범이의 오토바이 앞길을 비춰 줄 수 없다면, 제각각의 불행은 어두운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으며 다른 비극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무엇을 더 크고 또렷하게 얘기해야 하는가.

한국노총 대변인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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