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기사보기 다음 기사보기 2024-04-19 닮은꼴 농성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 스크롤 이동 상태바 포토뉴스 닮은꼴 농성 기자명 정기훈 입력 2019.10.07 08:00 댓글 0 다른 공유 찾기 바로가기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닫기 ▲ 정기훈 기자쪼르르 담벼락에 기대어 앉은 저들은 닮았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다. 한솥밥 여러 끼를 먹었으니 식구라고 할 만하다. 요즈음 가족보다 자주 보는 사이니 친한 친구다. 길에 나서 같이 밥을 굶으니 동지다. 언젠가 나란히 앉아 보자기 두른 채 머리를 깎았는데 스타일이 한가지였다. 길이며 빛깔과 구부러진 모양도 갖가지였던 머리칼은 그날 아스팔트 바닥에 뒹굴었다. 바람은 같았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머리칼이 얼마간 자라 저만큼이다. 요만큼도 달라진 게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농성 가방을 꾸렸다. 짐이 적지 않아 여행용 캐리어를 꾹꾹 눌러 채웠다. 뱃속은 비웠다. 단식농성은 기한의 정함이 없었다. 오래 끓인 곰국이 혹시 상할까 싶어 작은 비닐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두고 나왔다. 남편은 알아서 잘 챙겨 먹는다고. 아이들이야 다 커서 걱정 없다고 말했다. 늦둥이 초등학생 아이를 남기고 온 엄마가 다만 낯빛이 살짝 어두웠다.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물려주지 않겠다고 시작한 노조였고 싸움이었는데 아이들한테 지금 미안한 마음 어쩔 수가 없다. 교육청의 근속수당 500원 인상안을 모독이라고 느꼈다. 공정하지 않다고 여겼다. 공정임금제 공약 이행 요구를 앞세웠다. 매년 집 나와 이게 뭐 하는 거냐고, 얼굴 잔뜩 찌푸렸다. 옆자리 동료가 가져온 소금통을 보고는 금세 또 웃었다. 이제 막 두 끼 굶은 참인데, 소금이 그렇게 맛나더란다. 그냥 소금이 아니고 아홉 번을 구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식 농성이니 엄마들의 싸움 한 꼭지가 또 9부 능선 즈음이다. 매년 반복됐다는데, 언제 한 번 수월한 적이 없었다. 닮은꼴이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 공유 이메일 기사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닫기 기사 댓글 0 댓글 접기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댓글 내용입력 비회원 로그인 이름 비밀번호 댓글 내용입력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회원 로그인 비회원 글쓰기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로그인 옵션 창닫기
▲ 정기훈 기자쪼르르 담벼락에 기대어 앉은 저들은 닮았다.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다. 한솥밥 여러 끼를 먹었으니 식구라고 할 만하다. 요즈음 가족보다 자주 보는 사이니 친한 친구다. 길에 나서 같이 밥을 굶으니 동지다. 언젠가 나란히 앉아 보자기 두른 채 머리를 깎았는데 스타일이 한가지였다. 길이며 빛깔과 구부러진 모양도 갖가지였던 머리칼은 그날 아스팔트 바닥에 뒹굴었다. 바람은 같았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머리칼이 얼마간 자라 저만큼이다. 요만큼도 달라진 게 없다고 엄마는 말했다. 농성 가방을 꾸렸다. 짐이 적지 않아 여행용 캐리어를 꾹꾹 눌러 채웠다. 뱃속은 비웠다. 단식농성은 기한의 정함이 없었다. 오래 끓인 곰국이 혹시 상할까 싶어 작은 비닐에 나눠 담아 냉동실에 넣어 두고 나왔다. 남편은 알아서 잘 챙겨 먹는다고. 아이들이야 다 커서 걱정 없다고 말했다. 늦둥이 초등학생 아이를 남기고 온 엄마가 다만 낯빛이 살짝 어두웠다. 아이들에게 비정규직 물려주지 않겠다고 시작한 노조였고 싸움이었는데 아이들한테 지금 미안한 마음 어쩔 수가 없다. 교육청의 근속수당 500원 인상안을 모독이라고 느꼈다. 공정하지 않다고 여겼다. 공정임금제 공약 이행 요구를 앞세웠다. 매년 집 나와 이게 뭐 하는 거냐고, 얼굴 잔뜩 찌푸렸다. 옆자리 동료가 가져온 소금통을 보고는 금세 또 웃었다. 이제 막 두 끼 굶은 참인데, 소금이 그렇게 맛나더란다. 그냥 소금이 아니고 아홉 번을 구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식 농성이니 엄마들의 싸움 한 꼭지가 또 9부 능선 즈음이다. 매년 반복됐다는데, 언제 한 번 수월한 적이 없었다. 닮은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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