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3개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 공약이자 국정과제다. 공이 국회로 넘어갔는데, 전망은 밝지 않다.

실업자·해고자 노조가입 허용, 기업별노조 임원은 불가

정부는 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이번주에 대통령 재가를 받아 지난달 24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ILO 3개 기본협약 비준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지난 7월31일 입법예고안과 같다. 실업자와 해고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지만 기업별노조 임원은 될 수 없다. 실업자·해고자 조합원이 사업장을 출입하거나 시설을 사용할 때에는 노사가 합의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을 지켜야 한다. 퇴직하거나 해고된 공무원·교원과 소방공무원·대학교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노조법상 노조 전임자임금 금지 규정은 삭제한다. 노동부가 운영 중인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관한다. 근로시간면제심의위에서 정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노사합의는 무효다.

사업장 안에서 생산시설을 점거하는 행위는 전부 또는 일부 금지된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개별교섭을 할 때 사용자에게 성실교섭 차별금지 의무가 부여된다. 복수 교원노조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도 신설됐다. 현행 교원노조법 6조(교섭 및 체결 권한 등) 3항의 교섭창구 단일화 의무조항 효력은 2009년 말 사라졌다.

노동계 “선비준 안 하면 EU 무역제재 우려”

ILO 기본협약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은 각각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룬다. 다음달 상임위별 내년 예산심의가 끝나면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보수야당 반대가 만만찮다. 한국형 실업부조 시행을 위한 ‘구직자 취업촉진 및 생활안정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함께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ILO 기본협약과 관련해 여야 합의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심사조차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서정 노동부 차관은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비준동의안도 통과가 어려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ILO에 (비준기탁서를 보내) 비준을 요청하는 시간도 늦어질 것”이라며 “입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사단체는 정부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 취지와 충돌하는 사용자 요구안이 반영됐다”고 비판했다. 재계는 “노동계 편향적”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논의가 벽에 부딪히면 법 개정안보다 비준동의안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에서 “정부가 이곳저곳 눈치를 보다가 법 개정안이 누더기가 됐다”며 “선입법 절차를 문제 삼지 말고 비준동의안을 신속히 처리한 뒤 그에 맞게 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준절차가 늦어지만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분쟁해결에서 한국 정부가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부에 따르면 조만간 한·EU FTA상 분쟁해결 절차인 전문가패널 소집 단계가 진행 중이다. 패널이 구성되면 12월 말이나 내년 초에 전문가패널 권고안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정부가 비준 지연에 더해 법 개악까지 밀어붙인 결과 EU 주장이 패널에서 인정되고 EU가 무역제재를 할 명분을 얻게 된다면 정부와 여당은 도대체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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