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여전히 조국의 시간이다. 오늘은 지난 28일 서초동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참석자가 몇 명이냐를 두고서 논쟁이다. 이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나는 100만명이 넘었는지, 10만명도 안 되는지, 뭐가 맞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 보다는 이날 집회에서 ‘검찰개혁’ 말고도 ‘조국 사수’ 구호까지 등장했다는 것에 놀랐다. 그렇다면 그 수가 얼마든 대규모로 국민은 촛불시민이 돼 검찰의 ‘조국’ 수사에 맞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진보성향의 한 일간신문은 “다시 타오른 촛불”이라는 제목으로 1면을 가득 채워 보도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권 심판을 위해 타올랐던 서울 광화문광장의 촛불이 이제는 서초동에서 조국 사수를 위해, 검찰개혁을 위해 타오르고 있다는 것인가. 그토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일컬어지는 검찰개혁과 조국 사수가 대단한 거라고는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그저 놀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사실 서초동 촛불집회 참석자수보다 내가 대리하는 주요 사건의 판결 결과에 관심이 있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조국을 사수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라는 것인지보다는 노동사건의 판결 이유가 더 궁금하다. 아무리 이 나라가 조국으로 야단법석이라도 어쩔 수 없이 나는 노동자권리타령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오늘도 법원 판결에서 파견의 이유를 찾아 읽는 것이겠다. 지난 20일 광주고등법원에서 현대제철 불법파견 판결 선고가 있었다.

2. 걱정이 많았다. 1심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는 현대제철(순천공장) 사내하청 근로는 파견근로라고 인정받아 승소했지만, 2심 광주고법에서 판결 선고를 앞두고 이러저런 걱정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사한 방식으로 일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이 순천지원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받지 못해 패소한 결과가 현대제철 사건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다. 현대제철 사측은 그 판결문을 제출하면서 파견근로로 인정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제철소 최초로 순천지원에서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인정받는 판결을 받은 이후 철강업체 사용자들과 사용자단체를 중심으로 파견근로로 인정돼서는 안 된다고 선전공세를 펼쳐 왔다. 그 일환으로 연구용역·토론회 등을 통해 노동법 등 관련학자들이 도급인의 지시권 운운하며 파견이 아닌 도급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뒷받침한 발표를 했다. 그 자료는 그대로 재판부에 제출됐다. 사실 나는 이런 일을 당하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노동자를 위한 자유와 권리에 관련된 노동사건만을 대리해 오면서 수도 없이 직접 겪거나, 지켜봐 왔던 일이었다. 노동사건에서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중요한 하급심 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대법원 등 상급심에 제출할 사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그 결과를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노동법학회지에 게재했다. 심지어는 시중에 유통하지 않은 채 단지 법원 제출용으로 출판사 명의로 출판하는 일도 있었다. 내가 그 사건의 대리인이라서 사측이 제출한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책자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뭐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내게 그들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노동법을 연구한다는 것이 사용자를 위해서 연구를 바치는 자임에 분명했다. 이런 자들이 한 말을 판결문에 쓰라고 사측대리인은 반복해서 주장했던 것인데, 다행히도 광주고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파견근로라고 판결한 것이다.

3. “MES는 단순히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일의 결과에 대한 검수를 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고 확인하는 PDA 단말기와 같은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가 사내협력사업체의 근로자들에 대한 작업을 지시하고 관리·감독할 수 있는 측면의 기능이 강화된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광주고법 2019. 9. 20. 선고 2016나546 등 판결) 바로 이 부분이 내가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리하면서 1심에서부터 파견근로의 주요 근거로 주장해 왔던 것이다. 원청 현대제철의 통합 생산관리시스템(MES)을 통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수행은, 결국 MES가 원청 현대제철의 작업지시이고 관리·감독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면서 소장과 준비서면에 쓰고, 순천공장 현장검증에서도 밝혔다. 이에 대해 사측은 “MES는 단지 도급업무를 발주하고 완료된 업무를 검수하며, 피고와 사내협력업체 사이에 작업정보를 공유하고,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필요한 제반 정보가 기록·처리되는 자동전산시스템으로, MES를 통해 근로자들에게 지시하거나 업무를 관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항소심 광주고법 재판에서는 더욱 강력히, 반복해서 했다. 하지만 위와 같이 현대제철에서 MES를 통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수행은 원청 현대제철이 MES를 통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고 관리·감독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는 원청 현대제철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는 주요한 근거인 것이다. 현대제철에서는 원청 노동자조차도 MES를 통해서 작업을 수행했던 것이라서 도대체가 MES를 빼고서는 사용자로서의 작업의 지시, 관리·감독은 별것 없었으니, 이걸 파견근로의 판결 이유로 쓴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4. 물론 법원은 단순히 MES를 통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수행만으로 파견근로라고 판결 이유에 쓴 것은 아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의 파견 판단기준에 따를 때 그 기준에 해당한다며 그 판단 요소별로 많은 증거자료 제출과 함께 그에 해당함을 구체적으로 주장했던 것이고, 법원은 그러한 사실을 일일이 열거하면서 판결 이유로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MES를 통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수행에 관해서 원청 사용자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을 지시하고 관리·감독한 것이라고 판시한 판결이 낮게 평가될 건 아니다. 원청 근로자와 공동작업을 하는 등 원청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사내하청업체의 작업 투입 노동자 선발이나 그 수, 작업 및 휴게시간, 휴가, 근태 점검 등의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사내하청업체가 그 노동자들의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을 갖췄으며 계약 수행의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췄는지 등의 나머지 파견 판단의 요소들에도 MES가 무관치 않다. 파견 판단에서 전부가 아니라도 주요 근거의 하나일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렇게 내가 이번 판결에서 MES 부분을 주목해서 읽고 있는 것은 이 나라 제조업체 대다수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제철과 유사한 시스템을 통해서 작업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사측은 재판 과정에서 내세우면서 파급력 등을 우려하며 파견근로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러하기에 나는 MES를 통한 작업수행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많은 사업장에서 현대제철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번 현대제철 판결에 의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대다수는 실질적으로 원청 사업장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하고 있다. 파견법 등 법적인 문제로 근로자파견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을 체결하지만, 만약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원청에 노동자를 제공하는 계약, 즉 파견계약을 체결하고서 했을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이다. 파견근로로 판단되는 것이 마땅한 일을 하는 것이니, 법대로 판단해야 할 법원으로서는 파견근로로 판단한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판결은 크레인 운전 외에 후처리·물류·크레인·아연드로스·롤가공·기계정비·전기정비·포장·차량경량화·유틸리티(에너지·냉난방·폐수 처리)·실험실·고철장 등 현대제철 순천공장에서 모든 사내하청 근로를 파견근로로 판단했다. 정규직과 혼재해 작업이 이뤄지는 자동차생산공정을 중심으로 법원이 사내하청업체 근로를 파견근로로 인정했던 것과는 달리 단순히 정규직과 혼재로 판단하지 않고 파견근로라고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주요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정비, 고철장, 폐수 처리, 실험실 등 부수공정 업무까지 사내하청 전 공정을 망라해서 파견근로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는 위에서 본 MES를 통한 작업수행이 주요하게 고려됐다고 볼 수 있다.

5. 이렇게 판결의 이유를 읽고서 보니 불법파견 등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의 현실이 더욱 크게 보인다.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말해지는 검찰개혁 공약보다도 비정규직에 관한 공약을 들여다보게 된다. “상시·지속적 업무 및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으로만 직접고용하고 출산·휴직 결원 등 예외적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비정규직의 “사용사유 제한 제도” 도입으로 진입 입구를 규율하겠노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76면)이 아직까지도 정부 입법안으로도 국회에 제출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그 의지를 확인하게 된다.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으로 만들어 주겠다면서 한 검찰 등 개혁 공약(정책공약집, 27면)은 굳이 이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검찰에 보장해 주고 있어, 굳이 공수처까지 설치해서 권력 눈치보기 없이 수사토록 할 것까지 있겠냐고 물을 지경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감축을 위한 비정규직법 개폐 입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방치하고 있다. 제발 검찰개혁이 되면 하겠다고 말해 주기라도 하면 좋겠다. 공약한 대로의 입법 추진이라도 하겠다고 말이다. 사실 이런 내 말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나라의 오늘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시간은 아니다. 노동자에게는 그저 법이 정한 권리를 보장받는 걸 걱정해야 하고 그 대리인은 판결의 이유를 읽는 시간만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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