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파업이 다행히도 끝났다. 그러나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주변에서는 아직도 파업 노조원들의 구호소리가 매일 그치지 않고 들려온다. 호텔을 드나들 때도 철문과 경찰대원 사이로 가야 한다.

외국에서 신변을 걱정하는 전화가 걸려 올 때마다, `데모하는 나라 한국'에 관한 비판같이 들려 "별것 아니니 걱정 말라"고 변명하지만 생각하면 딱한 일이다.

응급실 의사들과 의과대학 교수들이 파업을 하고, 호텔 노조가 파업을 하고 금융분야 종사원이 파업을 선언하는 판국이다. 한국의 환란재연을 막으려면 구조조정을 끝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친한파 외국인들은 이러한 집단 파업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36년 전 한국이 극빈국으로 허덕일 때, 외국에 갔고 우리 나라가 그 동안 비약적인 경제 발전으로 OECD회원국이 되고 금융위기에서 빨리 회복한 것을 외국무대에서 자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의 고질병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데 대해 창피하면서도 너무나 안타깝게 느끼고 있다.

파업이란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생산성에 상응하는 보수를 정상적인 대화를 통해 받는 길이 없을 때 하나의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산활동을 집단적으로 정지함으로서 의사관철을 시도하는 모험적인 최후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파업을 시도하는 노동조합은 자기가 속해있는 기업이나 단체의 기업이윤이나 장래에 관해 분석을 하고 파업의 당위성을 냉철히 고려한 후 시대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기업주는 단순한 돈벌이를 떠나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이고 파업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대화통로를 언제나 열어 두어야 한다.

이번 금융파업 명분 가운데 중요한 구호가 `관치금융 반대'이다. 지금 시대에 관치금융이 나쁘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방법론에 있어 의견 차이가 있겠지만 민선 정부가 임명한 관료들이 국민의 세금을 불가피하게 투입, 국유화된 금융기관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그들이 해야할 당연한 의무인 동시에 권리라는 것을 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이 경우에 정부는 대국적인 면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고 어느 집단의 이익에 배치되는 것이 국부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주어진 정책을 집행, 그 공과를 선거에서 심판받는 용기와 신념을 가져야할 것이다.

다만 이런 용기와 추진력이 일관성과 신뢰성 있는 건전한 정책에 입각해야 할 것임은 말 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국회라는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헌법상의 기구를 무시하고 국민대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방법으로 특정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문명사회의 질서를저해하고 긴 세월을 통해 쌓아 온 제도적 개혁에 역행하는 일이다.

파업의 시기성(Time Appropriateness) 문제도 한번 고려해 보자. 근본적으론 노동생산성 이상의 보수를 계속 추구하는 기업은 살아 남지 못한다. 우리 기업들은 세계에서 부채·자산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런 그릇된 경영실태로 초래된 97년 금융대란의 상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환각에 취해 있는 사람이 많다. 실정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제조업계는 99년 일시적인 호황으로 환란에서 벗어났다는 환상을 초래했으나 실은 경상수입으로 이자 비용을 충당했을 뿐 부채의 절대액을 줄이는 데는 불충분했다. 그나마 제조업의 절반이 이자지불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었던 바 2000년 상반기의 증시불황은 그 상태에서 현저한 후퇴를 초래했다.

대우계열을 포함해 국민경제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100여개의 기업이 기업개선작업(Work-out)에 들어갔으나 천문학적 숫자의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실질적인 부채탕감은 극히 부진, 오로지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업들만 워크 아웃에서 졸업할 예정이다.

이것은 몇 사람의 경제 각료의 무능에 기인하기 보다는 우리 나라가 당면했던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주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절대 다수의 배경을 갖지 못한 정부의 정책수립과 그 집행에 있어서의 한계점이라고도 볼수 있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 워크 아웃에 들어간 기업의 부채 탕감은 채권단과 금융기관들의 손에 달려있는데 그들 자신의 자산액을 줄임으로서 자기생존조건(BIS 유지 등)에 상치되는 거액의 기업부채 탕감을 해주는 것은 비현실적인 제도였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생산성을 넘는 임금을 계속 지불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며 사활의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어쨌든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이나 기업, 노조간부와 정부가 사심이나 집단이기심을 일단 뒤로 하고 태풍 속을 지나가는 선원들과 같은 공동운명체로 구조조정을 끝내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중요한 시점에 현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도 애국적이고 건설적인 입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위상과 신뢰를 유지해야 하고 현실적으로는 외자를 유치하는데 필요한 요건도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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